트럼프 관세로 도요타가 흔들리면 일본은 ‘국난’
국내 생산 300만대-대미 수출 50만대 체제 위기감
일본 자동차 관련 종사자, 전체 취업인구 10% 육박
이시바 총리, 국난으로 규정하고 대책본부 구성해 대응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일괄 관세조치가 일본에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국난’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번 관세 전쟁을 넘어서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일본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자국내 300만대 생산을 고집하는 이유 = 전세계 신차 판매량에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도요타는 ‘자국내 300만대 생산체제’를 고집한다. 지난해 도요타의 일본 내 생산은 총 312만대로 이 가운데 약 53만대는 미국으로 수출했다. 지난해 도요타가 미국에서 판매한 233만대 가운데 현지생산(127만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고급 브랜드 ‘렉서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도요타가 전세계에서 매년 1000만대 이상 판매하면서도 자국내에서 30% 가량 생산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고용문제 때문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기준 7만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고, 마츠다와 스바루 등 완성차 계열사 및 부품 계열사 등을 포함해 40만명에 육박한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일본내 자동차 관련 전후방 고용인구는 약 558만명으로 전체 취업인구의 8.3%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따라서 미국이 완성차와 부품 및 엔진 등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도요타의 기존 생산체제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8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는 도요타의 일본내 생산체제를 뒤흔들 것”이라며 “약 6만개사에 이르는 부품회사 등으로 연결된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도요타는 당분간 원가 절감 등을 통해 미국내 판매가격을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한계가 있다. 완성차와 부품 등에 매겨진 25% 일괄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가와 비용 절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지 판매가격을 올리거나 최후 수단은 현지 생산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증권은 도요타가 미국내 판매가격을 10% 올리면 판매대수는 5~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는 연간 3400억엔(약 3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영업이익의 6% 수준이다.
◆자동차 산업, 대미수출 40% 육박 = 자동차산업이 일본의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28%에 이른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6%)과 엔진 등(5%)을 포함하면 40%에 육박한다.
따라서 관세조치로 일본 자동차 수출이 받는 타격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기준 일본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대미 수출 규모는 150만대에 이른다. 금액으로도 4조3000억엔(약 43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닛케이는 “도요타 등이 원가 절감이든 생산기지 이전이든 기존 공급망에 커다란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완성차업체뿐만 아니라 부품업체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차의 경우 일본에서 직접 부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다. 도요타 하이브리드차(HV) 캠리는 미국에서 조립하지만 현지 조달은 55%에 그친다. SUV 차량인 코롤라크로스도 북미 현지 조달은 60% 수준이고, 일본에서 25% 가량을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달부터 엔진과 변속기, 구동장치 등 자동차에 들아가는 기간 부품에 추가적인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도요타 부품 자회사 덴소의 마쓰이 야스시 부사장은 “관세가 오르면 공급망 안에서 흡수하지 않고 가격을 인상하는 것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이번 트럼프 관세에 따른 자동차업계의 생산과 판매 부진이 현실화되면 관련 업계에서 최대 1만8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돼 전체 GDP의 0.4% 수준인 2조2000억엔(약 22조원)의 감소가 예상됐다.
닛케이는 “자동차 산업은 자유무역을 전제로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해왔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그러한 전제를 뒤집는다”며 “약 9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갖고 있는 도요타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중소기업을 포함한 일본내 공급망은 토대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차, 미국과 4번째 악연 = 일본 자동차업계는 지금까지 모두 세차례에 걸쳐 미국과 악연을 갖고 있다. 1980년대 미일 무역마찰이 극도에 달했던 때가 첫번째 위기였다. 일본 정부는 1981년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자동차를 비롯한 다양한 업종에서 자율적으로 수출을 규제했다.
혼다는 1980년 일본 완성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 오하이오주에 현지 공장을 건설했다.
당시 가와시마 키요시 혼다 사장은 “오하이오 공장은 혼다의 생명선”이라며 첫 미국 진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일본차를 망치로 부수는 장면은 대일 적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두번째 갈등은 1995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이 통상관련법 301조에 기초해 일본 고급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위반한다고 제소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자동차 업계는 자국내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체제를 더 확대했고, 2007년 사상 처음으로 해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웃돌았다.
세번째 충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 미국내에서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리콜사태가 벌어지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인 제너럴모터스(GM)가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지자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통상정책에서 보호주의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50년에 가까운 미일 자동차 관련 분쟁은 대체로 일본 업체의 자구책 등으로 극복해왔다는 평가다. 특히 도요타는 2021년 미국내 신차 판매에서 GM을 제치고 전체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닛케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로 인한 일본 자동차의 위기를 약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며 “향후 자동차산업의 디지털화를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의 틈에서 경쟁력을 갖춰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4일 여야당 대표들과 만나 “국난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면서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초당파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8일 범정부 차원의 대책본부를 구성해 관세 전쟁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