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핵심기술 보호 위한 ‘법적 공백’ 해소 시급하다

2025-04-14 13:00:01 게재

글로벌 경제안보 대전환의 시대 주요국은 저마다 경제 안전보장 정책 강화에 힘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는 국가의 핵심경쟁력과 직결되는 경제안보의 핵심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8월) 총 97건의 해외 기술 유출이 적발되었으며 그 중 국가핵심기술 관련 사례는 31건이다. 유출 시 피해액은 약 23조원대로 추산되며 이는 산업 생태계와 안보 기반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나 펀드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망 기업을 인수합병한 후 핵심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는 이미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2002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하이디스 인수 후 인력과 자금을 중국 현지 공장 설립에 투입했다. 이후 4년 만에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하고 철수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 기술이 유출되며 중국 LCD 산업이 세계 시장 선두로 도약하게 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2006년 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은 최근까지도 보완을 거듭해 3월 31일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등 일부 개정안의 입법예고가 있었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실효성 의문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내용이 빠져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투기적 외국 자본의 우회적 침투를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할 경우 산업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국내에 등록된 법인은 실질적으로 외국인이 지배하더라도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법적 맹점이 주목받고 있다. MBK는 국내 법인이지만 회장과 주요 임원 다수가 외국 국적자다. 그럼에도 현행법상 외국인 투자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

MBK가 고려아연 인수에 성공할 경우 사모펀드의 비즈니스특성 상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핵심 기술과 자산의 매각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이 보유한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 국내 유일 안티모니 제조 기술 등의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 고려아연은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중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전략광물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으로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높다. 국가 경제안보와 기술 주권 보호를 위해 이러한 사각지대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해외 주요국의 규제 사례를 보면 국가핵심기술 보호 규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을 명확히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연방규정집(CFR) ‘800.224’ 조항에서는 외국인을 정의할 때 외국 국적자와 외국 단체뿐만 아니라 이들에 의해 통제되는 모든 단체를 포함한다. 이는 형식이 아닌 실질적 지배력 중심의 접근으로 법적 허점을 최소화한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산업기술보호법 본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의 정의를 확대해야 한다. ‘외국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국내 법인’을 명확히 외국인 범주에 포함시켜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모펀드나 특수목적법인을 통한 우회 인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법 개정 통해 '외국인의 정의' 확대해야

형식보다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한 강력한 보호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우리의 기술 자산과 국가 경쟁력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