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달러자산에 위험할증료 요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달러·미국채시장 흔들 … 트럼프 관세폭탄에 미 경제 신뢰 저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번째 임기가 거의 3개월이 지난 현재 금융시장은 ‘미국이 무궁무진한 안전자산의 우물’이라는 이야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채 수익률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위험의 신호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각) 사설 ‘미국에 새로운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가(Is There a New U.S. Risk Premium?)’에서 “미국채 수익률 상승과 달러가치 하락은 전세계적인 우려의 신호”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의사 결정과 관세로 전세계 투자자들이 달러와 미국채를 기피하고 있는 것인가” 자문한 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짚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주 약 50bp 상승했다. 한때 4.5%를 넘기도 했다. 미국채 30년물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했다. 반면 달러지수는 올해 1월 트럼프 취임일 당일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전세계 거의 모든 교역국에게 부과한 관세를 중국만 제외하고 90일간 유예했다. 그는 11일 “국채시장의 혼란이 있었다”며 “국채시장은 잘 돌아가고 있다. 잠시 문제가 있었지만 매우 빠르게 해결했다”고 말했다.
WSJ는 “소소한 금융 패닉 상황에서는 달러와 미국채가 전통적으로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주 달러와 미국채 움직임은 그렇지 않았다”며 “문제는 전세계 자산관리자들이 투자처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인지 여부”라고 짚었다.
WSJ는 “투자자들이 미국채를 약간이라도 외면하면 미국정부의 차입 비용이 상승할 것이다. 연방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액은 이미 국방지출액보다 많으며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달러약세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자본흐름은 변동성이 있으며, 트럼프 정책이 바뀌거나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미국채 수익률은 다시 하락할 수 있다. 일각의 예상처럼 올해 미국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면 미국채 수익률이 하락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국채시장 변동성을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투자자 신뢰를 잃는 것은 대통령직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에 대한 신뢰 저하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각) ‘트럼프,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장 확실한 투자처에 리스크를 더하다(Trump Has Added Risk to the Surest Bet in Global Finance)’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자들은 금융공황 전쟁 자연재해 등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미국정부가 부채를 감당하고 버틸 것이기에 미국채가 하늘과의 약속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가정하고 미국채를 매입한다”며 “하지만 지난주 국채시장 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같은 기본명제에 대한 믿음을 얼마나 흔들었는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NYT는 “최근 국채시장의 급격한 매도세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세계 최대 경제국에 대한 신뢰도 저하 때문으로 보인다”며 “많은 투자자가 한꺼번에 국채를 매도하면 정부는 다른 투자자들이 이를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더 높은 이자율을 제시해야 한다. 학교 건설에서 교량 보수에 이르기까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더 광범위한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경기침체로 전이될 수 있다. 가계가 주택담보대출(모기지)와 신용카드 청구서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 소비지출이 줄어들어 크고 작은 기업들에 위협이 된다. 그러면 기업은 고용과 확장을 포기하게 된다”며 “미국채 시장의 혼란은 투자자들이 이미 그같은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는 징후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채 매도 배경엔 다른 요소들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 헤지펀드 등 금융기관들이 국채가격과 미래가치 간 격차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복잡한 거래에서 일시에 빠져나오면서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을 수 있다. 또 증시 급락으로 대거 손실을 본 투기세력들이 파산을 막기 위해 국채를 매도해 현금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미국채를 대거 매각해 트럼프 관세에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NYT는 “이처럼 한꺼번에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는 시장에서 미국채 수익률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은 환자 몸에서 적혈구 수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감소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특혜 무너질 수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3일(현지시각) 온라인판 기사 ‘달러 이탈은 미국정부 재정을 망칠 수 있다(A flight from the dollar could wreck America’s finances)’에서 “달러패권으로 미국정부가 막대한 부채와 적자가 가능했다. 미국채 가격급락(수익률 급등)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일본은 종종 ‘트리플 야스(triple yasu)’를 겪었다. ‘야스’는 싸다, 낮다는 뜻의 일본어로 같은 날 동시에 주식시장 하락, 국채수익률 상승, 통화가치 하락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일본의 트리플 야스는 국가적 쇠퇴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자산으로부터의 도피는 훨씬 더 큰 손실을 의미한다. 달러와 미국채는 전세계 피난처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안전하다는 전제하에 구축돼 왔기 때문”이라며 “미국경제 성장이 강해져 국채 수익률이 상승한다면 이는 달러강세를 가져올 것인데, 오히려 달러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미국의 경제안정성을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현재 미국정부 재정은 위태롭다. 연방정부 순부채는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비슷하다. 지난 12개월 동안 미국정부 지출은 세수보다 많았다. 그 격차는 GDP의 약 7% 규모다. 내년에는 거의 9조달러(GDP의 30%)에 달하는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
미국경제는 지난 수년간 물가 급등을 겪었다. 트럼프 관세폭탄으로 또 다른 물가급등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11일 뉴욕연방준비은행 존 윌리엄스 총재는 올해 3.5~4%의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시간대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내년 물가가 6.7%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예상치다.
투자자들이 겁에 질린 건 당연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은 트럼프 1기정부의 감세정책을 연장하고 추가할 방침이다.
싱크탱크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지난 10일 미 하원은 향후 10년간 5조8000억달러 적자를 추가할 수 있는 예산안을 승인했다. 이는 현금 기준으로 트럼프 1기 감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인프라 법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 결과 이미 암울한 GDP 대비 부채비율은 비참해질 것”이라며 “CRFB는 이 비율의 증가속도가 2배로 늘 수 있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공화당에 정책 조정을 강요할 수 있다. 트럼프정부는 11일(현지시각) 대중국 추가관세 부과대상에서 스마트폰과 기타 가전제품을 면제했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경제학자들은 최근 수년 동안 달러의 과도한 특혜로 미국이 너무 많은 부채를 지고 있어 달러기반 금융시스템이 취약해지고 붕괴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며 “불과 일주일여 전만 해도 ‘킹달러’의 지배는 안정적으로 보였고 그같은 재앙은 매우 먼 미래의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같은 일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큰 혼란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