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시대, 탐구 활동이 경쟁력 된다

2025-04-16 13:00:25 게재

5등급제 전환에 수시·정시 모두 학생부 영향력 확대 … 탐구 중심 평가 흐름 가속

현 고1부터 전면 적용되는 고교학점제에서는 내신 체계가 달라진다. 성취평가제를 적용하면서 5등급 상대평가도 병기한다. 종전 9등급 체계에 비하면 변별력이 약화해 숫자의 힘이 다소 약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2028 수능 역시 출제 범위가 낮아져 영향력이 줄어들며 정시에서도 학생부 반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얼마 전 정부의 ‘고교교육 기여대학사업’에서 교육과정 연계 전형 운영 개선 분야의 자율공모사업에 채택되면 2028학년부터 정시 비중을 30%까지 낮춰준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줄어든 정시만큼 늘어날 수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형국이다. 사교육 일각에서는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며 고교학점제 과목 선택 설계 컨설팅, 학생부 관리 노하우, 세특 주제 탐구 전략 등의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달라진 교육과정과 바뀔 대입에서 경쟁력 있는 학생부는 무엇이며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한 ‘탐구 역량’은 어떻게 키워가면 좋을지 알아봤다.

2028학년도 대입을 앞두고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대학 입시의 풍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내신 성적은 9등급 상대평가에서 성취평가 중심 5등급 병기 체계로 전환되고 정시 선발 비율은 축소되는 대신 수시 비중이 확대된다. 이는 단순히 숫자로 줄 세우는 입시가 아니라 학생부 기록에 담긴 ‘과정’과 ‘의미’로 평가하는 체제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과거 대입은 수능 성적이나 내신 등급 같은 ‘숫자’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글자’가 중요해지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성취 기준에 도달하면 학점을 인정받는 제도다. 특히 내신 등급이 종전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서 급간이 커졌고, 성취평가(A~E)도 병기된다. 숫자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하는 구조다.

◆`수시·정시전형, 숫장 중심서 탐구 중심으로 = 특히 성취평가제는 학생의 평가 방식 전반을 바꾼다. 단순히 정답률을 기준으로 한 점수가 아니라 출석 수행평가 지필시험 등 학습 전 과정의 평가 결과가 학생부에 반영된다. 정량에서 정성으로 중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김상근 서울 덕원여고 교사는 “이제는 높은 점수보다 성실하고 균형 있게 모든 과목을 이수한 이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내신 체계의 변화는 등급의 의미도 달라지게 만든다. 예를 들어 기존 9등급제에서는 상위 4%만이 1등급이었지만 5등급제에서는 10%가 1등급에 해당한다. 서울 주요 대학의 2023~2024학년 교과전형 합격자 70% 컷 성적을 보면 1~2등급 이내다. 5등급제로 변환하면 1등급 내외다. 즉, 5등급제가 되면 이들 대학에서 교과 성적의 변별력이 약화된다. 세특이나 수행평가 내용 등 ‘글자’ 기록을 통한 평가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영준 서울 보성고 교사는 최근 5등급제를 기준으로 고교 졸업생 25명의 내신을 변환해 분석한 결과 9등급제에서는 앞선 순위였던 학생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이 5등급제 변환 기준에서는 오히려 상위로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3~5등급에 해당하는 과목 수가 많은 경우다. 이를 근거로 과목간 등급 차가 큰 학생보다, 많은 과목이 고르게 우수한 학생이 더 유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고교의 내신 평가 변화는 대학의 선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학 최근 교육부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에서 고교학점제와 연계한 입학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다. 이 사업 항목에 선정되면 정시 비율을 30%까지 낮출 수 있다. 정시 감소는 곧 학생부 종합전형 비중의 증가를 뜻한다. 이에 따라 학생의 교과 성적 외에 세특, 수행평가, 창의적 체험활동(창체), 진로 연계 활동 등 종합적인 학교생활 기록이 대입에서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주요 대학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전형 요소를 재설계하고 있다. 경희대는 학생부 교과전형에서도 단순 교과 성적 외에 탐구력과 진로 연계 활동 등을 서류 평가에 포함하고 있으며 동국대는 출결과 행동 특성까지 반영해 인성과 사회성까지 평가한다.

변화는 수험생에게 두 가지 대비책을 요구한다. 하나는 전 과목에서 기복 없이 고르게 성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기 성과 중심의 특정 과목 올리기식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수행평가, 토론, 발표, 창체 활동 등 수업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 하나하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김상근 교사는 “고1은 공통 과목이 대부분이라 큰 차이가 없지만 고2·3이 되면 진로선택 과목까지 모두 5등급제 평가를 받게 되면서 내신 관리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며 “과정을 성실히 수행한 학생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진단했다. 이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는 수시 전형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내신과 수능을 병행 준비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새로운 대입제도는 숫자보다는 글자, 성적보다는 기록,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 변화하고 있다. 2028학년도 입시는 단순히 점수를 높이기 위한 학습이 아니라 배움의 전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학생부에 충실히 담아낼 수 있는지가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탐구력 키우는 수업기반 질문·독서·보고서 = 2028학년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는 대입에서 ‘기록’을 보다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높은 성취도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고 수업 시간에 학생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떻게 질문하며,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배움을 확장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대학 평가에서 점점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특에 담기는 ‘탐구활동’이 주목받는다.

새 교육과정에서 모든 교과는 학기 단위로 이수하며, 공통과목도 1학기 ‘공통국어 1’, 2학기 ‘공통국어 2’로 나뉘어 각각 500자 이내의 세특이 작성된다. 이전에는 학년 말 한번만 마감하면 되었던 세특이 이제는 매 학기마다 마감되기 때문에 수업과 수행평가, 탐구활동의 적시성과 충실도가 중요해졌다. 한수정 서울 경희고 교사는 “세특 기재 주기가 짧아진 만큼 학생들은 질문하고 생각하며 배우는 자세를 수업시간에 바로 드러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제는 중학생을 갓 졸업한 고1 학생이 탐구를 어렵게 느낀다는 점이다. 이재원 동국대 책임입학사정관은 “탐구는 꼭 거창한 연구가 아니다”며 “수업 중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발표하거나 책을 찾아보는 등 주도적인 학습 태도가 탐구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다수의 고교에서는 입학 초기 탐구 활동의 개념을 설명하고 예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기초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탐구력은 단순한 수행이 아니라 사고력과 연결된다. 진로와 관련된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생각을 확장하는 활동도 탐구에 포함된다. 2학년 독서 과목의 수행평가에서는 직접 책을 선정하고 독서 후 질문과 궁금증을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한 교사는 “기계적인 독서록보다 지적 호기심의 흐름이 드러나는 독후 성찰이 탐구 과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탐구 활동은 계열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다소 차이가 있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팀장은 “인문계열은 사회 문제에 대해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는 방식, 자연계열은 실험과 가설 검증을 통한 탐구활동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한다.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현실 문제와 연결하거나 다양한 과목을 연계해 적용한 사례는 평가자의 눈에 띄기 쉽다.

◆교과 융합·자기주도적 학습이 입시 무기 = 특히 교과 융합 탐구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미적분’에서 배운 수학 개념을 ‘경제’ 수업에 활용하거나 ‘문학’ 수업에서 길러진 비판적 사고를 ‘영미문학읽기’에 적용하는 사례는 융합형 학습의 대표적인 예다. 동아리나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교과 개념을 실생활 문제로 확장하는 경우도 의미 있는 탐구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탐구력은 대학의 학생부 평가 항목에도 명확히 반영된다. 경희대와 동국대는 공통적으로 학업역량, 진로역량, 탐구력, 공동체역량을 학생부 서류평가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교과 학습 발달 상황 속에 나타난 탐구 성과를 중요하게 본다. 단순히 수업을 잘 따라간 것이 아니라 수업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가 중요하다.

탐구활동은 평가뿐 아니라 작성 방식에서도 체계가 요구된다. 주제 선정에서부터 자료 수집, 전개 방식, 결과 요약과 자기 성찰까지의 과정을 교사와 협의하며 수행해야 하며 탐구 종료 후에는 보고서와 자기평가서를 제출해 활동을 정리한다. 배 교사는 “과목 수가 늘어난 만큼 모든 교과에서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탐구 흐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부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기록’이다. 탐구 주제를 급하게 정하거나 인터넷 검색으로만 채운 활동은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교사는 학생의 탐구 방향이 수업 내용과 어떻게 연계되고 실제로 어떤 생각의 진전을 보였는지를 관찰하며 기록하기 때문이다.

결국 탐구는 수업의 연장이자 학생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활동이다. 질문은 배움의 출발이며 질문을 품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입시에선 그대로 ‘역량’이 된다. 이 책임입학사정관은 “좋은 탐구는 수업 중에 생긴 궁금증에서 출발해 스스로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단순 결과보다 탐구의 전개 과정과 학생의 주도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입시의 패러다임이 수능과 내신 등 정량적 기준만으로 학생을 판단하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2028학년도 대입은 그런 전환점의 첫 시험대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대로 과목을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수업 안에서 질문과 탐구를 생활화한 학생이라야 대학이 주목하는 ‘글자’를 채울 수 있다. 주도적인 탐구와 성찰의 기록이 학생부의 진짜 경쟁력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김기수 기자·윤소영 내일교육 리포터 yoons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