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미중 협공을 시대전환의 모멘텀으로
최근 한 대학 연구기관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국민의 절반 정도가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2018년 11.5%, 2021년 26.2%였던 수치가 올해 들어와 49.9%로 크게 늘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더 낫겠다고 생각했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자해를 시도해보고자 생각했다’는 응답도 2018년에는 한 자릿수(4.6%)였는데 올해는 22.2%로 급증했다. 사태가 자못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노년은 외로움이, 4050세대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 중 4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또 다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의 경우 평생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지난 5년 동안 우울증 환자가 3배 정도 증가했다.
좀 더 깊이 추적해보면 일치된 요인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 불안’이다. 미래의 삶이 지금보다 안정되고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언제 지금의 삶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삶을 짓누르고 있다.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보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경형이 강하다. 젊은 부부에게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물으면 커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누구 고생시키려고 애를 낳느냐고 반문한다.
국민 절반 집단 우울증 앓는 희망없는 사회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30대의 46%가 이 땅은 희망이 없다며 조건만 갖추어지면 이민 가겠다는 의사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2030세대 투자자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며 한국 주식시장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젊은 혈기를 자랑하던 많은 K스타트업이 큰물에서 크게 놀자며 국내 시장을 떠나고 있다.
예사롭지 않다. 2019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받으며 기적을 일군 나라로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불과 몇 년 만에 상황이 반전되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오늘의 힘겨움을 견디게 할 내일의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집단 우울증은 그로부터 빚어진 사회적 현상이었다.
얼추 짐작하고도 남음이 없다. 한국경제는 앞에서는 미국이 틀어막고 뒤에서는 중국이 거칠게 밀어제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전쟁으로 폭발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형태를 달리하며 장기화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기세를 과시하고 있다. 과학기술 인력, 연구논문, R&D 투자 등 각종 지표에서 미국을 따라잡았거나 능가할 조짐이다. 이는 고스란히 산업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주력산업 대부분이 겹치는 우리 경제를 위협할 공산이 크다. 생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위기를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할 정치는 극단적으로 양분해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재수 없다고 여겼던 피크 코리아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희망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울려 퍼진다. AI 시대를 맞이해 세계경제는 빠른 속도로 ‘탈대량생산 고객 맞춤형 생산’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저마다 특색이 다르고 수시로 바뀌는 고객 요구에 부응하자면 과학기술력과 문화 창조력이 조화롭게 결합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가장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간단한 예로 한국산 세탁기와 건조기가 미국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할 수 있는 비결은 우수한 기능과 함께 탁월한 인테리어 효과에 있었다. 권위주의 통제 사회인 중국은 과학기술력에서는 강세를 보일 수 있더라도 문화 기술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 시대의 획 긋는 장이 되길
한국은 능히 고객맞춤형 생산 글로벌 선두주자로 등극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은 부의 상징이자 문화인의 징표로 통할 수 있다. 비싸더라도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제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무역장벽도 넘고 중국의 발전을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새로운 미래이다. 미·중 협공은 한국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자 고강도 혁신을 단행하는 강력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이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자들이 자신의 진영을 대표해 힘을 겨루는 게 아닌 진영을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국민 지도자로 등극하고자 다투는 무대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