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어른 김장하’ 신드롬이 의미하는 것

2025-04-18 13:00:09 게재

지난해 이때쯤 회사 선배로부터 “김장하 선생이라고 진주에서 한약방을 했던 훌륭한 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만 해도 의정갈등 상황에 정신이 없던 터라 그 얘기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러다가 12.3 계엄사태가 한달 넘어가면서 내란성 불면의 시간을 보내던 올 연초 깊은 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순식간에 ‘내란성 불면’이 사라졌다.

‘어른 김장하’는 경남 진주에서 1963년부터 ‘남성당’ 한약방을 열고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이름 내기를 달가워하지 않은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가족을 돌봐야 했던 김 선생은 19세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고 그때부터 한약업에 종사했다. 시간이 흘러 한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뤄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김 선생은 그렇게 번 돈을 주위의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선생은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 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것이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선생이 지원한 학생들이 10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들이 성장해 판사 교수 언론인 교사 사회운동가 등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심판으로 화제의 인물이 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 1000여명이 넘는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이끌어낸 이준호 교수도 김장하 장학생들이다.

김 선생은 학생이 필요하다고 하면 “잘 쓰라”는 말만 하고 장학금을 봉투에 넣어줬다. 진주 지역청년문학회 지역시민신문 문고 극단 환경운동단체 여성단체 등도 도왔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고 어떤 대가도 없었다. 김 선생은 “줬으면 그만이지”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으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김 선생은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 주변에 나눠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 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다”며 죄송해 하는 이에게는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라고 격려해 줬다고 한다.

최근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가 다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국내 TOP 10 콘텐츠에 진입했다. 4월 전국 극장에서 재개봉한다.

극심한 양극화 시대, 이른바 ‘사’자들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시대, 느닷없는 계엄선포로 불면의 밤을 지새운 이 시대에 ‘어른 김장하’ 신드롬은 ‘그래도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김규철 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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