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보수의 ‘기승전 용병’ 습성
보수진영의 ‘기승전 용병’ 습성이 또 도지고 있다. 위기 때마다 밖에서 용병을 데려와 문제를 해결하려 한 과거 전례를 되풀이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진영은 검증 안된 정치신인을 국민 앞에 불쑥 내놓고는 표를 읍소했다. 후과는 컸다. 경험이 없는 신인들은 숱한 실정과 논란을 자초했고 실패를 반복했다.
1996년 김영삼정권은 자신이 내쫓은 판사 출신 이회창 전 총리를 총선 선대위원장으로 재발탁했다. 이 전 총리의 ‘대쪽 이미지’를 팔아 누적된 국정위기를 돌파하려 한 것이다. 당시 그를 지근에서 모셨던 한 인사는 이 전 총리에 대해 “미래에 대한 고민은 터럭만큼도 없는 그냥 판사”라고 평했다. 정치신인 이회창은 결국 두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고 보수는 ‘10년 야당’의 설움을 겪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용병으로 쓰려 했다. 세계적 유명세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기름 바른 장어’로 통하던 평생 외교관 반 전 총장의 정치인 변신은 쉽지 않았다. 지하철 승차권을 사겠다며 만원짜리 두 장을 한꺼번에 판매기에 밀어 넣는 해프닝을 빚어 야당으로부터 ‘폭소대잔치’라는 조롱을 받았다.
2022년 대선에서는 ‘검사 윤석열’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집권 문재인정권의 피해자라는 반사이익을 노린 것이다.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검사티를 못 벗었던 윤석열은 실정을 거듭하다 끝내 12.3 내란사태로 자폭했다. 보수도 궤멸의 위기를 맞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진영은 용병을 들먹인다. 친윤(윤석열)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대선에 내세우자고 난리다. 정치 경력 수십년의 당내 대선주자들의 경쟁력이 ‘2% 부족’하니, 보수층 입맛에 맞을 법한 경력과 경제 전문가 이미지의 ‘한덕수'를 데려오자는 것이다.
친윤의 ‘한덕수 추대론’은 실패한 용병 전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용병의 유명세를 앞세워 어떻게 당선이 된다고 해도 그가 대통령직에 필요한 리더십과 자질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지하철 표를 사본 적이 있을까. 정치인에 요구되는 ‘도덕성 허들’은 넘을 수 있을까.
정치 초년생에게 국정을 맡기면 뒤탈이 날 수밖에 없다. 검증이 안 된‘검사 윤석열’을 용병으로 영입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보수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을 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관료로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정치 경험은 제로다. 보수는 ‘관료 한덕수’가 ‘검사 윤석열’과 다를 것으로 확신하는가. 자신들도 확신 못하는 용병을 대선 한 달을 남기고 불쑥 내세워 표를 읍소하는 건 정말이지 ‘검사 윤석열’에게 상처 입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