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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극복과 예방이 중요한 이유

2025-04-24 00:00:00 게재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굳어진 걱정이다. 우리 헌정구조가 보기보다 취약하고 이를 수호하려는 정치적 의지나 국민적 공감대가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현재진행형으로 거듭 확인하기 때문이다. 12.3 내란사태 이후 달라진 것이라고는 대통령 한 사람이 파면된 것뿐이다. 내란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정당과 대통령 후보가 사과와 반성없이 국정을 운영하고 정국을 움직이는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헌정파괴, 더 정확한 표현으로 내란 상황을 일상처럼 겪은 세대로서 이런 현실은 걱정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1981년 1월 24일 해제된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불법적) 비상계엄이 약 44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훌쩍 건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를 대놓고 옹호하는 세력이 건재할 수 있을까.

60년 전인 1965년, 한일협정이 조인 비준되어 발효된 그해도 을사년이었다. 8월 말 개강한 대학가에 한일협정 비준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크게 번졌다. 바로 전 해에 6.3 계엄령으로 한일회담반대 학생시위를 진압한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또 군을 동원하는 것은 체면 깎이는 일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망신이었다. 내란으로 집권한 군부정권이 거꾸로 시위 학생에게 내란죄를 씌우려 했다는 안팎의 시선도 따가웠을 것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원한 조치가 위수령이란 것이다.

위헌 위법한 제도, 68년 동안 건재

위수령(衛戍令)은 지금도 그 뜻을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위수의 사전적 의미는 부대가 일정한 지역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면서 경비하는 일을 말한다. 이승만 정권 시기인 1950년 3월 27일 제정한 위수령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유명무실화한 채 법전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를 재발견한 이가 법률가 출신 강서룡 당시 국방차관이었다. 그는 김성은 장관에게 이 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일본 침략 시절 일본군 주둔지역에서 민중 소요로 일본 거류민이나 군이 위해를 당할 때 주둔 군인들이 합법적 방어를 위해 민중을 사살할 수 있는 제도로, 사실은 계엄령보다 강도가 센 제도다. 또 영장 없이 체포 구금이 가능한 점 등 그 효력 면에서 계엄령과 다를 바 없지만 별도의 계엄군이 출동하는 것도 아니고, 해당 지역 내 주둔하는 부대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는 차이밖에 없다.”

박정희정권은 이 녹슨 칼을 세번이나 꺼내 써먹었다. 1965년 8월 26일 한일협정비준무효화시위, 1971년 10월 15일 교련반대시위, 1979년 10월 20일 부마민주항쟁 진압을 위해서였다.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은 위수령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조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애초부터 국군조직법 조항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집회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도 반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터였다.

위수령이 폐지된 것은 제정된 지 68년 만인 2018년 9월 11일이다.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의 별도 의결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심의 의결로 폐기됐다. 위헌 위법한 조치지만 폐기가 쉽지 않았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현행범 체포 때 병기 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일부 독소조항 개정 논의가 일었지만 흐지부지된 바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판결이 나기 직전에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령을 준비하는 문건을 작성한 것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폐기 주장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위수령 있었으면 12.3내란 향방 달랐을 수도

지금까지 위수령이 남아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요청하면 서울 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될 수 있고 국회는 이를 무력화할 아무런 법적 수단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 불법 계엄도 마다하지 않은 윤 전 대통령에게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있었을까. 내란이 성공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소한 국가사회에 훨씬 큰 해악이 가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내란적 상황과 내란적 환경, 내란적 세력의 존재가 엄존하는 게 확인된 이상 두려움과 경각심을 거둘 수 없다. 정당한 법 집행을 가로막은 경호처 등 무장기관, 내란 증거 봉인 악용 우려가 있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제도, 대통령권한대행의 권한 범위, 내란 선동 행위 제재 등 내란 극복과 예방을 위한 치밀한 개혁 방안을 다음 정부는 강력히 펼쳐야 한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