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아프리카 톺아보기

글로벌 사우스 아프리카, 한반도 평화의 열쇠

2025-04-24 00:00:00 게재

세계경제의 패권을 두고 미·중 간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대외 의존도 80%가 넘는 우리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반도 안보다. 최근 북한은 ‘두개의 국가론’을 공식화하며 기존의 남북관계 합의를 부정하고 적대적 국가 관계를 선언했다. ‘민족’ 개념 대신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신냉전 구도 내에서 생존 전략을 재편하고, 지난해 12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강화를 공언했다.

새로운 외교적 지평과 지정학적 구상 필요

남북관계의 근본적 패러다임이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의 전략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교적 지평과 지정학적 구상이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지역이 바로 ‘글로벌 사우스’다. 우리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통해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강대국들과도 공존할 수 있는 접점을 넓혀갈 수 있다. 지금은 균형적 공존이 필요한 시기다. 이를 통해 한반도 질서 전환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확보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아프리카가 있다.

현재 아프리카는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축으로서 경제·자원·지정학적으로 중차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UN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 아프리카인은 25억명에 달하며 평균 중위연령은 18.8세로 매우 젊다. 이는 미래 노동력과 소비시장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는 4차산업 핵심 광물의 보고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세계 코발트 생산의 70%, 매장량의 52%를 보유하고 있으며 짐바브웨의 리튬, 모잠비크의 흑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망간 등 아프리카 대륙에는 핵심 광물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로비토 회랑 프로젝트’와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을 통해 콩고 잠비아 앙골라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기반으로 교량 철도 항만 등 인프라를 전방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는 인도양과 대서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며 54개국인 아프리카는 유엔에서 전체 의결권의 약 28%를 차지하고 있어 막강한 외교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유엔 결의안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찬성 28개국, 기권 17개국, 불참 8개국, 반대 1개국으로 다양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아프리카가 국제무대에서 단일한 블록이 아닌, 독자적 외교노선을 추구하는 균형자로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북한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23년 북한은 부르키나파소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양자협력을 강조하며 군사 장비와 광업, 의료, 농업, 연구 등 다양한 산업분야의 집중 협력을 밝혔다. 이런 현상은 주변국인 서아프리카 사헬지역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러시아와 이란의 진출이 가시화되었고, 북한의 진출도 가능하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또한 지난해 1월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19차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와 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6차 유엔환경총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 실패, 국제경제제재의 지속,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국경 폐쇄 등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군사협력 범위를 중동 지역에서 확장하여 모잠비크 우간다 탄자니아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에리트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활발한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장기적으로 한반도 안보지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의 외교 확대는 국제무대에서 우호 세력을 확보하고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려는 전략적 시도인데, 특히 군사협력과 비공식 경제 활동을 통한 자금과 자원 확보는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결국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아프리카와 다층적 협력체계 구축

우리는 북한의 전략적 움직임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와 다층적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외교적 관계를 공고히 하고, 글로벌 노스와 사우스 사이의 ‘정직한 중재자’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서방 중심 글로벌 웨스트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중심 글로벌 이스트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면서도 강대국 간 갈등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 이들이 전략적 선택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중재자로서 역할을 강화한다면 아프리카 진출을 모색하는 북한을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 사례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지도가 높아 개발협력과 기술 분야에서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전자정부, 디지털금융, 스마트농업, 청정에너지 기술 등 우리나라의 발전 모델과 기술적 강점을 활용해 아프리카의 지속가능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중국 러시아 등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도 대북 레버리지 우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과 대화의 통로, 협력의 기제를 확장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를 매개로 한 대안적 대북전략 조건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동시에 남북관계 진전 추이에 따라 아프리카 내에서 남북 간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공인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토대로 기업협력사업 등을 활용해 우리가 중국 러시아 등과 양자 또는 다자협력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전통적 기여외교 및 첨단기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북한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우방국 역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기여외교 형태로 진행되는 협력에 반대할 여지가 크지 않다. 물론 국방협력의 경우 중국 러시아와 연계는 어렵지만,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 간 양자협정 또는 한국과 아프리카 지역 경제공동체와의 다자 협정 형태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강대국들의 경쟁구도를 고려하면서 ‘정직한 중재자’로서 균형점을 찾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유엔을 포함한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정직한 중재자’와 같이 아프리카도 국제사회에서 ‘전략적 캐스팅보트’로서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국제 현안에서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제1차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통해 외교적 접점을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엔 공동 결의안 추진, ‘한-아프리카 외교장관 회의’와 ‘한-아프리카 경제협력 위원회’ 정례화 등 고위급 외교 채널을 체계적으로 공고화해야 한다. 곧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이스트-웨스트 간 협력 창출(가칭)’을 기조로 하는 이니셔티브를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서 한중 및 한러 협력을 위한 토대가 확보될 수 있다.

외교적 접근법 전환이 필요한 시점

우리의 시야를 한반도 및 주변 지역으로 국한했을 때 벗어나기 어려운 신냉전 구도의 딜레마에서 탈피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중장기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신중하게 물고기를 쫓는 사람은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다.” 아프리카와의 협력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경제의 구조적 토대이자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조건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우리의 든든한 우방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신중하고도 전략적인 발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적 접근법을 전환해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 정치외교학

유럽아프리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