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본·고보증 구조에 투기시장으로 전락한 부동산PF

2025-04-24 13:00:09 게재

총 사업비 중 평균 3%만 자기자본, 나머지 대출·분양금 의존

공사비 상승, 미분양 적체 장기화에 위기 경제전반으로 확산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안팎의 중견업체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공사비 상승, 미분양 적체 등 악재도 해소되지 않았는데 사실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까지 예정돼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시장 침체에 따른 미분양, 특히 악성 미분양 증가로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이 증가하면서 국민경제 전반으로 위기 상황이 전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부동산PF 부실이 쉽게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는 주요 원인으로 저자본·고보증을 기반으로 투기시장으로 변질된 왜곡된 시장 구조에서 찾는다.

24일 금융·건설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수면아래 잠복했던 ‘부동산PF발 경제위기설’이 재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PF발 위기가 국가경제를 위기로 내모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저축은행 31개가 무너지고 고객 10만명 이상이 손실을 입었던 2011년 저축은행에서 발생한 뱅크런 사태도 부동산PF 부실에서 촉발됐다. 2013년에는 부동산PF 익스포저가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급증하면서, 2019년에는 증권사들이 제공한 대규모 채무보증이 문제가 되면서 사회적 긴장감을 높였다. 특히 2022년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돼 경제 전반에 깊은 주름을 남겼다.

지난 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PF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순주 금융혁신연구팀장은 “부동산PF는 지난 십 수년간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에 위기를 초래했으나 근본적인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업주체가 극히 적은 자본을 투입하고 건설사 등 제3자의 보증에 의존해 부채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중 어떤 나라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은 30% 이상 자기자본 투입 = KDI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추진된 PF사업장 300여개(총액 100조원 규모)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각각 평균 3749억원가량의 사업비가 필요했다. 이중 사업주체격인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118억원(3.2%)에 불과하고 나머지 3631억원(96.8%)을 금융권 대출 등 부채로 충당했다.

사업장 유형별로 자기자본비율은 주거용(2.9%)이 상업용(4.3%)보다, 지방(2.3%)이 수도권(3.9%)보다 낮았다.

취약한 재무구조로 인한 높은 부채 의존도는 매번 반복되는 문제다. 2009년 주요 4대 은행이 보유했던 부동산PF 대출 464건(주택PF 366건)을 조사한 결과, 자기자본비율은 주택PF의 경우 4.2%였으며 비주택PF의 경우 6.0%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선진국들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40%에 이르는 사례가 많았다. 금융기관의 지분투자는 물론 연기금의 투자 참여도 활발하다.

미국의 경우 사업비 중 30%가량은 시행가 자금과 투자금으로 구성한 자기자본으로 충당한다. 2008년 금융위기 등의 부동산 시장 위기를 거치면서 40% 이상 투입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일본은 30~40%를 자기자본으로 채우는데 이 중 10%가량을 시행사가 책임진다. 네덜란드는 시행자 10%, 지분투자자 25% 구조로 총 사업비의 35%를 자기자본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들 국가 시행사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자본조달원을 확보한다. 미국의 경우 펀드, 리츠, 금융기관, 개인투자자 등이 참여한다. 특히 보험사는 PF 대출은 물론 지분투자에도 참여하고 있고, 연기금도 장기자산운용 관점에서 5~15% 비중으로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다.

지난달 5일 경기도 고양시 한 부지에 세워진 서울 분양 아파트 견본주택 모습.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분양 계약·중도금까지 이용 = 부동산PF 제도는 시장보다는 정부 주도로 형성됐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건설사들에 당시 900% 수준이던 평균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한다. 그 결과 건설사들은 대규모 부채를 부담해야 하는 개발사업을 직접 시행할 수 없게 됐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이 건설사들을 대신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행사들이었다.

부동산 개발은 토지매입과 인허가 단계, 분양을 시작하는 건설 단계, 준공 후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시행사는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토지매입단계에서부터 금융기관 브릿지론을 이용해 부동산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토지매입 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으면 시행사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본PF 대출을 받는다. 본PF 대출금은 건설비용 외에 토지구입자금 상환에도 사용한다.

여기에 선분양 제도가 결합하면서 저자본·고보증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 상업·주거용 부동산을 선분양할 때 시행사는 수분양자(분양받는 소비자)가 납입한 계약금과 중도금을 공사비로 활용할 수 있다. 즉, 공사비 상당부분을 수분양자 자금으로 충당하고 토지비만 조달하면 되므로 자본을 적게 투입해도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한국은 주요 국가중 수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공사비로 사용하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민 주거안정보다 투기자본이 활개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정부가 앞장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시행사-시공사-금융기관, 위기 확산 고리 = 이런 구조는 이른바 부동산 활황기에는 문제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거나 금리가 상승하면 한계를 노출한다.

부동산PF는 상대적으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 금융기관은 부족한 신용을 채우기 위해 시공사를 끌어들인다. 시행사로부터 공사계약을 수주한 시공사는 금융기관과의 ‘책임준공확약’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준공할 것을 약속한다. 시행사의 공사비 지급이 중단되면 시공사는 자체자금이라도 동원해 공사를 이어가야 한다.

일부는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대신 상환한다는 약속도 한다. 시공사의 신용등급이 낮거나 중소형 건설사인 경우 부동산신탁사나 증권사가 추가로 보증하기도 한다.

문제는 최근 미분양, 공사비 상승, 조합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책임준공 의무에 따른 시공사들의 우발채무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시공사는 이로 인해 법정관리 등 파산하는 사례도 있다.

충북지역 건설공사 실적 1위인 중견건설사 대흥건설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18일 대흥건설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대흥건설은 1994년 6월 설립된 중견건설사로 지난해 기준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에서 96위(충북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책임준공형(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진행한 평창, 안산 등 전국 6개 PF사업장(생활형숙박시설 사업장)과 관련해 자금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떠안게 된 금융비용은 1840억원에 달한다.

시공능력평가 116위의 안강건설도 지난 2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333억원, 영업이익 4억606만원, 당기순이익은 11억1000만원으로 흑자를 낸 기업이다. 부채총계는 611억8710만원으로 부채비율은 157.5%다. 건설사 부채비율이 평균 200%를 넘는 것에 비하면 나름 안정된 기업으로 평가받은 곳이다.

하지만 안강건설은 경기도 안산 성곡동 물류센터 시행사인 한승물류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서 대출금 830억원을 갚지 못하고 채무상환 부담을 떠안자 연대보증을 선 안강건설도 이에 휩쓸렸다.

건설업 내 구조조정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성훈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4실장은 “올해 지방사업장 관련 운전자금과 PF 우발채무 부담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줄어 유동성 미흡한 건설사의 신용 위험이 더 크게 확대될 것”이라며 “주요 사업장의 분양률과 채권 회수 상황 등을 주요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책, 실효성은 지켜봐야 = 정부도 부동산PF발 위기가 반복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시공사에게 불리한 책임준공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간 책임준공 연장 사유는 천재지변과 내란, 전쟁뿐이었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개선안은 원자재 수급 불균형과 법령 제·개정으로 인한 환경 변화, 전염병, 태풍, 홍수, 폭염, 한파, 지진 등을 포함했다. 연장 기한은 최장 90일로 설정했다.

배상 범위도 차등화했다. 경과일수에 따라 90일에 걸쳐 비례해 차등적으로 채무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특히 자기자본비율이 40% 이상이면 책임준공의무를 면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개선안이 실효성이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책임준공 의무를 면제 받기 위해 사업비의 4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투입할 시행사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제도 개선 방안은 5월 중순부터 시행되지만 기존 사업장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악성 미분양 증가, 위기 장기화 조짐 = 정부 개선방안과 별개로 부동산PF 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각종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악성 미분양’은 계속 증가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전국 2만3722가구로 전년동기(1만1867가구) 대비 99.9%(1만1855가구) 증가했다. 전월(2만2872가구)과 비교하면 6.1%(1392가구) 늘었다. 이는 2013년 9월(2만4667가구) 이후 11년 5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일반 미분양도 7만61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8.0%(5187가구) 증가했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3.5%(2563가구) 감소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13.0%로 집계됐다. 집합상가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각각 10.1%, 6.7%를 기록했다. 평균적으로 전국 상가 10곳 중 1곳이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다.

상가 공실률이 단기간에 반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이 확대된 데다 장기 불황으로 내수가 침제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업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50.6%로 오프라인(49.5%)을 처음 넘어섰다. 2022년 만해도 오프라인 비중이 50.8%, 온라인이 49.2%로 오프라인이 우세했으나 편리한 쇼핑과 빠른 배송을 무기롷 한 온라인 유통이 역전했다.

온라인 유통은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 매출은 최근 5년간(2019~2023년) 전년대비 14.2%, 18.4%, 15.7%, 9.5%, 9.0%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오프라인 부문 매출 증감률은 -1.8%, -3.6%, 7.5%, 8.9%, 3.7%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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