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시 부모 돌봄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히다
열 스트레스의 세대 간 영향과 생존 전략의 변화
물고기 등 여러 종에서 성장 속도와 수명 달라져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폭염(열파, heatwaves)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늘어날수록 생물 성장 속도나 생존 등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다. 양육 방식 등에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더디고 힘들어도 지구온난화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28일 국제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의 논문 ‘부모 돌봄 과정에서 누적되는 열 스트레스의 자손 영향(Heat stress effects on offspring compound across parental care)’에 따르면, 부모 돌봄으로 폭염으로 인해 자손이 겪는 열 스트레스의 부정적 영향을 일부 완충할 수 있지만 열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그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대만대학교와 영국 뱅거대학교 연구팀은 매장딱정벌레(Nicrophorus nepalensis)를 대상으로 열 스트레스가 부모 돌봄과 자손 성장에 미치는 복합적 영향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매장딱정벌레를 대상으로 정상 온도(17.8℃)와 열 스트레스 조건(21.8℃)에서 △부화 전 돌봄(사체 준비) △부화 후 돌봄(자손 급식) 영향을 각각 조사했다.
부화 전 돌봄은 매장딱정벌레 부모가 죽은 동물 사체를 발견하면, 그 사체의 털이나 깃털을 제거하고 둥글게 말아서 자신의 알과 나중에 태어날 새끼들을 위한 먹이로 준비하는 과정이다. 쉽게 설명하면, 음식을 아이들이 먹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부화 후 돌봄은 알에서 유충(새끼벌레)이 부화한 뒤 부모가 유충들에게 준비해 둔 사체를 먹이로 제공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나의 돌봄 기간에만 폭염 영향을 받을 경우 생식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부화 전과 부화 후 기간 모두가 폭염을 경험하면 생식 성공률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는 부모 돌봄의 각 단계가 열 스트레스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며 복합적 영향이 누적될 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함을 시사한다.
또한 암컷 매장딱정벌레가 따뜻한 조건에서 자식에게 먹이를 제공할 때 체중이 더 많이 줄었다. 이는 열 스트레스 하에서 부모 돌봄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됨을 의미한다. 열 스트레스 하에서 준비된 사체에서 자란 자손은 다 자랐을 때 크기가 작았으며 사망률도 높았다.
이 연구는 부모 돌봄이 있는 종들이 기후 변화가 심화할 때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 그리고 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적응 전략이 발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열 스트레스 영향은 육상 생태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전지구적인 현상으로 해양 생태계 역시 유사한 변화를 겪는다. 특히 물고기와 같은 외온동물은 온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기후변화가 성장속도와 수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영국왕립학회보 B의 논문 ‘성장률 –수명 균형의 실험적 입증(Experimental demonstration of the growth rate–lifespan trade-off)’에 따르면, 물고기와 같은 외온동물의 성장률은 온도에 따라 달라졌다. 온도 상승과 같은 환경스트레스를 받은 물고기일수록 성장이 빨랐다.
이는 장기적으로 수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늦게 큰 개체가 이후 더 짧은 성장 기간을 보상하기 위해 온도가 정상적으로 변한 뒤 빠르게 자라면서(보상 성장) 평균 수명이 14.5% 감소했다. 반면 천천히 성장한 경우 평균 수명은 30.6% 연장됐다. 이러한 경향은 물고기뿐만 아니라 새나 다른 포유류들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육상 생물인 매장딱정벌레와 해양 생물인 물고기는 서식 환경은 다르지만, 온도 상승에 대응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에는 유사점이 있다. 두 경우 모두 열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성장 속도와 에너지 분배 전략을 조정한다.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개체 크기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육상 생태계와 해양 생태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라는 공통적인 위협으로 연결되어 있다. 매장딱정벌레 사례에서 보듯 육상에서의 돌봄 행동 변화와 물고기의 성장 유형 변화는 모두 기후변화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온도 상승은 유기체 무게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의 논문 ‘전세계 해양 변화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류가 줄어들수록 악화된다(Shrinking of fishes exacerbates impacts of global ocean changes on marine ecosystems)’에 따르면, 상승하는 해양 온도로 2050년 평균 물고기 무게가 14~24% 감소할 수 있는 걸로 나타났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양 내 산소 수준과 자원 가용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물고기 크기에도 연쇄적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매장딱정벌레부터 어류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는 생물 생존 전략과 세대 간 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온난화가 지속될수록 생물은 더 작아지고 수명이 짧아지며 부모 돌봄 효과도 제한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 전반의 변화는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연결된 모든 생물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간 역시 이 변화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