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ESG 공시 의무화, 더 미루면 안된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시기와 대상, 형식을 기존 논의보다 더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금융위는 2021년 초 발표한 ESG 공시 단계적 의무화 계획을 통해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공시를 시행하고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행시점이 임박한 2023년 10월 갑자기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 후 지금까지 구체적 시행시점 등 로드맵을 확정하지 않았다.
2023년 출범한 ESG 금융추진단은 첫해 세 차례, 작년엔 단 한 차례 회의를 진행하는 등 그동안 뭉그적거렸다. 그랬던 금융위가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논의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3일 진행된 ESG 금융추진단 제5차 회의 내용에 따르면 금융위는 사실상 ‘2029년 시행’을 못 박고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의심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유럽연합(EU)의 역외 기업에 대한 공시 의무화 시기가 2029년으로 예정돼 있는 점을 고려해 국내기업들의 최초 공시 시행 시기를 검토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ESG 공시 대상도 축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이날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적 중요성에 따라 판단해 재무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자회사는 제외할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대상에서 20조원 이상으로 기준을 대폭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울러 공시 형식도 법정 공시 대신 한국거래소 공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의심된다.
전세계 주요국은 이미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진행한 상태다. EU 회원국 19개국이 올해부터 공시 의무화를 시작했고, 호주와 싱가포르 등도 당초 계획대로 올해 ESG 공시 의무화를 시행한다. 일본의 경우 이르면 2027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렇듯 전세계 주요국의 공시 최초 적용 시점은 2025~2027년에 몰려 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ESG를 부정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에 대한 지속가능성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내 공시 시점이 2029년으로 미뤄진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제적인 지속가능투자자본으로부터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기업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지속가능성 공시를 조속히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곧 들어설 새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법정 공시 도입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