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어린이가 행복한 교육개혁

2025-04-30 13:00:06 게재

며칠 지나면 어린이날이다. 4일이나 되는 황금 연휴에 가족여행을 떠나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각종 기념행사, 공연이 열리고 사회명사들은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고 칭송하는 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무 것도 달라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학원차들은 여전히 어린이들을 실어 나르고 부모들은 십여년 후에 닥칠 대학 입시, 취업 전쟁을 내세우며 잔소리를 퍼부어 댈 것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제하 식민지 시대에 어린이날을 만들 때는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가치관이 없었고 교육을 받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동에 대한 관심과 투자 과잉이 문제인 시대다.

그러나 당사지인 아동의 입장은 생략되고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아동은 행동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식민지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부모들은 “이것이 모두 자식들 잘되라고 하는 일인데 마음을 몰라준다”고 펄펄 뛸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면 본인도 기가 막힐 것이다.

아동에 대한 과잉투자와 관심이 문제인 시대

극단적인 사례이겠지만 최근에 네살짜리 아이가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나치게 빠른 조기 외국어 교육은 두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전문가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직 모국어 구사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기 이전의 아동에게 외국어를 주입시키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여 학부모들이 집단적으로 자녀의 영어 유치원을 끊기 시작했다는 뉴스는 아직 없다. 또한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거부 소동 속에서 학원에 초등학생 의대반이 생겼다는 뉴스가 있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 입학 기회가 확대되었으니 다른 집 아이보다 빨리 사교육을 받으면 자식을 의사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탓이다.

대학등록금보다 비싸다는 영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의대반은 자녀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부모의 의무감을 이용해 주머니를 터는 학원의 교묘한 마케팅 기법이 조장한 집단광기의 산물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영재라는 칭찬을 듣는 학생이라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입시를 치르면서도 선두권 성적을 유지해 세칭 스카이(SKY)대나 의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세상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카이대에 무작정 들어왔다가 전공과 본인의 적성이 맞지 않아 중도탈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거나 자살하는 사건도 있다. 이런 비극은 몇년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도 등장한다.

고학력 중상층 학부모들이 학원의 공포 마케팅에 취약한 이유는 입시전쟁에서 승리한 자녀를 보며 자신의 성공한 인생을 재확인하려는 강박관념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 미국의 벼락부자들은 자기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해 명품구입이나 호화파티에 돈을 펑펑 썼다. 이러한 행동을 사회학자 베블렌은 ‘과시소비’라고 불렀다. 최근 한국의 사교육 열풍도 실질적인 효용보다는 과시소비를 통한 학부모의 자기만족 추구 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문제의 해법도 간단해진다. 명품도 공급이 늘어나면 값이 떨어진다. 명품 대학이 늘어나면 스카이캐슬의 독과점은 무너진다.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생각해 보면 우선 의대만 들어가면 횡재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의사 수를 늘리고 의료의 공공화를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즉 대선 후보들은 의사들의 표를 얻겠다고 의대 정원 문제에서 어설픈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명품대학 늘면 스카이캐슬 독과점 무너질 것

스카이대 졸업장이 명품이라는 생각을 고치려면 지방대학에 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전국의 국공립대학을 통합해 전공만 표기된 졸업장을 수여하면 학벌 네트워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수요가 없는 4년제 대학의 전공은 과감하게 폐지하고 실용적인 기술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대를 육성하는 역발상도 해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가만히 있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야 아이들도 행복해진다. 물론 어른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종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겸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