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메가트렌드와 한-아세안 외교
한국과 아세안, 경제다변화 위해 미국도 중국도 아닌 새로운 대안시장 찾아야
트럼프발 관세 쇼크의 먼지가 잦아들면 우리 앞에 메가트렌드가 큰 물결처럼 바짝 다가올 것이다. 특히 우리가 6.3 대선을 앞두고 목전의 이익에 포획돼 이러한 변화를 놓치면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의 핵심 파트너 아세안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3D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직면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3D 메가트렌드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메가트렌드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그리고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탈동조화(Decoupling)다.
먼저 트럼프발 관세 쇼크와 긴밀히 관련된 탈세계화와 탈동조화를 살펴보자.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세계화를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중국 동남아 등 많은 국가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고 발전했다. 특히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미국의 지원과 시장 개방으로 엄청나게 발전해 이제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성장했다. 미국은 당초 중국이 자본주의 체제에 발을 디디면 미국을 닮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 대중 화친주의자였던 마이클 필스베리가 그의 책 ‘백년의 마라톤'에서 설파했듯이 이제 미국은 이러한 가정이 오류였음을 깨닫고 2018년 트럼프 1기부터 중국에 관세 부과 및 첨단기술 수출 제한 등을 통해 중국을 막아서고 있고, 바이든에 이어 트럼프 2기는 대중 봉쇄를 더 강화하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 강화와 미국의 리쇼어링
이제 세계는 미중 디커플링, 즉 탈동조화로 두개의 세계로 나가고 있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류의 자국 보호주의와 양자주의 선호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WTO는 불능화 단계에 있다.
미국은 리쇼어링(세계화 시대에 중국으로 간 미국 제조업의 국내 이전), 프렌드쇼어링(한국 일본 인도 동남아 등 우방국으로 중국 내 자국 생산기지 이전) 또는 니어쇼어링(멕시코 캐나다 등 미국 인근 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중국과의 분리된 생산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특히 트럼프 2기부터는 리쇼어링에 방점을 두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과 아세안은 그간 미국 시장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겨냥해 교역과 투자를 하며 발전해 왔는데 이제 미중 두개의 쪼개진 시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시장을 찾아야 한다. 경제 다변화다. 유럽연합(EU)도 큰 시장이지만 보호주의 장벽이 여전하고 인도는 아직 구매력이 다소 부족하다. 따라서 남은 시장은 7억 인구의 아세안 및 동남아 시장이다.
7억 인구의 아세안 및 동남아가 대안
동남아의 평균 1인당 소득은 아직 5000달러 미만이지만 중산층 볼륨이 커지고 있다. 자카르타 방콕 등 수도권의 소비자들은 한국의 소득과도 비슷해 구매력이 상당하다. 그간 동남아는 비슷한 경제구조 때문에 역외 수출에만 올인했는데 이제 아세안 시장을 겨냥해 역내 교역을 현재 23% 수준에서 35% 정도로 확대해 보험용 시장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도 중간재나 최종재를 미국 등 경제선진국에 수출하는 용도로 아세안을 활용하는 대신 아세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아세안 중심의 공급망 체제 구축 및 아세안의 제조업 역량 강화를 위한 경제 외교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또한 한국과 아세안은 아세안 10개국과 동북아 3국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교역을 활성화하면 유럽 통합시장 규모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변화된 환경을 고려해 중국 시장의 전략적 활용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과 아세안은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협력할 수 있다. 그간 효율성만 따지던 ‘적기생산방식’(Just in Time)이 대세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트럼프 2기를 겪으면서 위기를 대비한 ‘비상생산방식’(Just in Case)이라는 보험이 절실해졌다.
둘째, 다음 메가트렌드는 디지털화다.2025년 아세안 경제성장률이 5% 내외로 전망되는데 이는 세계경제 평균은 물론 우리와 선진국의 예상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아세안 경제가 역동성을 갖추고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디지털 경제로의 빠른 전환이다. 전 분야에서 확산되는 디지털화가 아세안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발전 요인은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에 익숙한 ‘디지털 원주민’이다. 2030년이면 중산층만 6억7000만명에 달하고 도시화 비율도 50%가 넘는다. 아세안은 중위연령이 30.2세로 여타 국가들에 비해 매우 젊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나고 자라면서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에 익숙한 디지털 원주민이다.
현재 아세안 디지털 경제 규모는 연 3000억달러인데 2030년에는 1조~2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규모는 아세안 국내총생산(GDP)의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과제 또한 만만찮다. 역내 회원국 간, 각 국내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디지털 격차, 자국 디지털 경제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와 각기 다른 규범, 디지털 경제를 떠받칠 인적 역량 부족 등이 과제다.
아세안에 대한 디지털 외교 강화
디지털 경제에서 앞선 우리 기업들이 아세안 디지털 경제가 주는 기회를 포착하고 아세안이 봉착한 과제들을 지원해 주면 윈윈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한아세안 디지털 외교를 보다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 메가트렌드는 탈탄소화, 즉 기후변화 적응 및 대응이다. 2025 코트라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는 태양광(베트남) 풍력(베트남) 지열(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알루미늄 구리 니켈 코발트 등 풍부한 친환경 발전 핵심 자원과 정부의 친환경 의제 달성 의지에 힘입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 각국은 비교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신재생에너지 용량 확대의 한계를 고려해 청정 석탄, 탄소 포집•저장 등 대체기술 개발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제조업 투자 이전, 데이터 센터 구축 등으로 아세안의 전력 수요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화력발전 감축 추세 속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주요 발전원 중 하나인 수력 발전량까지 급감하면서 에너지 안보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전망에 따르면 아세안 전력 수요는 2050년까지 2018년 기준 3배 이상 증가한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전체 전력 수요의 58%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한 전력 생산 설비 확충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남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분야뿐 아니라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원자력,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협업 수요가 커질 것이다.
차기 정부,잘 된 정책 계승 발전 시켜야
트럼프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더해 글로벌 메가트렌드는 아세안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대외적인 도전이다. 조만간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출범한다. 그간 과거 정부들은 신남방정책(NSP), 한아세안연대구상(KASI) 등 명칭은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한 아세안 중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아세안 내에서도 우리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차기 정부는 ‘과거 정부 지우기’에 몰두하지 말고 잘된 정책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탈세계화 또는 탈동조화, 디지털화, 탈산소화 등 3D 메가트렌드 분야처럼 아세안이 중점을 두고 있고, 우리도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
전 아세안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