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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거대한 충돌, 한국의 갈 길은

2025-05-02 13:00:03 게재

2025년, 우리는 거대한 충돌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이 단순한 무역분쟁을 넘어 전면적인 경제패권 전쟁에 돌입했다. 트럼프 2기정부의 관세 폭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환율 전쟁, 기술 패권 다툼… 그 무엇 하나 가볍지 않다. 세계는 숨죽이며 이 두 거인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한 ‘두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금융시장, 기술표준, 에너지 안보, 모두가 이 전쟁의 불똥을 맞고 있다. 그리고 그 불똥은 한국 경제와 기업,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이 전쟁은 과거 19세기 영국과 독일, 20세기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력을 갖춘 후발주자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패권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오늘날 중국은 그런 후발주자다. 미국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는 관세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지키려는 자 미국, 일어서는 자 중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다. 명목상 이유는 불공정 무역 관행, 기술탈취 문제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다르다. 그는 제조업 부흥을 원했고 중산층 표심을 잡으려 했다. 관세는 정치적 무기였다. 미국은 이 싸움을 통해 글로벌 제조업의 중심을 다시 자신 쪽으로 끌어오려 한다. 동시에 반도체 AI 배터리 등 미래 기술패권을 중국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관철되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는 관세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소비자 물가는 상승하고,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중국 견제’라는 대의명분 아래 뭉치고 있다. 트럼프뿐 아니라 민주당도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관세전쟁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희토류 통제, 농산물 구매 중단, 자국 시장 육성으로 맞섰다.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장기전을 준비하는 듯 보인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는 중국 지도부의 믿음이 깔려 있다. 중국은 단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 구축, 내수 경제 확장을 통해 미국의 의존도를 줄이고, 스스로 세계 경제의 핵심이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동시에 중국은 ‘쌍순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순환(내수시장 강화)과 국제 대순환(글로벌 공급망 확장)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우위에 있다. 경제규모, 금융패권, 군사력 모두 미국이 강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인구, 내수시장, 기술굴기라는 무기를 기반으로 버텨낼 수 있다. 이 싸움은 “누가 빨리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오래 버티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양국 모두 피를 흘릴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새로운 중심축을 향해 재편될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싸움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보 기술 가치관까지 얽힌 복합 전선이다. 따라서 단기간 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중 관세전쟁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신냉전 구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과거 냉전이 군사적 이념 대립이었다면, 현재의 신냉전은 경제와 기술, 표준과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복합 전쟁이다.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생명과학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동맹을 재편하고 있다. 일본 유럽 대만한국 등 주요 기술 강국들과 연대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통해 새로운 경제권을 구축하고 BRICS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독자적 경제 블록을 형성하려 한다. 이 신냉전 구도 속에서 한국은 명확한 전략적 비전과 외교적 균형감각을 갖추지 않으면, 외부 변수에 휘둘리는 작은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과 금의 부상

관세전쟁의 불길은 글로벌 금융질서에도 깊은 균열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지키려 하지만 과도한 재정적자와 글로벌 신뢰 저하로 달러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금 위안화 디지털 통화 등 대체 자산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금 매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며 ‘탈달러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금은 단순한 귀금속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시대에 신뢰의 최후 보루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역시 외환보유고 다변화, 디지털 금융혁신을 통해 금융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미래 금융질서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주권은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

전 세계가 맞는 후폭풍인 지정학적 파장은 어떻게 올 것인가. 첫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제조업이 중국에서 동남아 인도로 분산되며 한국 역시 생산기지를 다변화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다.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베트남 인도 멕시코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 둘째, 금융시장 불안이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신흥국 통화는 불안정하다. 안전자산인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향해 치솟고 있다. 중국 개인 투자자들과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글로벌 금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기술 표준 전쟁이다. 5G 반도체 AI 등 주요 산업에서 미국과 중국 중심의 블록화가 심화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어느 쪽 표준에 줄 설지 전략적 판단을 요구받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양극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넷째, 에너지 및 자원전쟁이다. 중국은 희토류 리튬 코발트 등 전략 자원의 공급망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공급선을 구축 중이다. 이러한 충격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준비된 나라만이 살아남는다. 전략 없이 흐름에 휘둘리면 우리는 남의 싸움에 희생당할 뿐이다.

생존을 넘어, 주도권을 향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더 이상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전략적 모호성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선 핵심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 공급선 다변화. 특히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자립도가 시급하다. 둘째, 반도체 배터리 AI 바이오 등 미래 핵심기술에 국가적 투자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R&D 예산 확대,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필수적이다. 셋째,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도 경제적 실익을 지키는 균형외교로 단순한 줄타기가 아니라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세우고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넷째, 초격차 기술을 뒷받침할 과학기술 인재 양성, 교육제도 개편과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이 필요하다. 다섯째, 데이터 AI 사이버 보안 등 디지털 영역에서도 독자적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은 민첩하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정부는 기술 자립도를 높이며, 사회는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미중 관세전쟁은 일시적 소나기가 아니다. 최소 5년, 길게는 20년 이상 지속될 장기적 구조 변화다. 과거 세계화는 끝났다. 이제는 '블록화된 세계' '새로운 국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관세전쟁의 불꽃 속에서 살아남을 자는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준비하는 자다. 지금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생존을 넘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지금이 바로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우리는 남의 전쟁에 휘말리는 피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세계 경제질서 재편의 주체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오늘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오늘의 선택은 10년 이후 운명을 결정한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