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국민하기 힘든 어지러운 세상

2025-05-07 13:00:51 게재

세상이 어지럽다. 나라를 떠받치는 권력 시스템이 뿌리까지 흔들리면서 많은 것들이 꼬이고 엉켜서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나라밖에선 무역 분쟁에 관세 전쟁까지 험난한 파고가 몰아치는데 나라 안의 세력과 집단은 대의(大義)를 외면하고 자기들 소리(小利)에 집착해 번번이 극한대결로 치닫는다. 연일 고조되는 혼란과 무질서에 현기증 느끼는 국민들은 참다못해 짜증섞인 비명을 지를 판이다. “국민하기 힘들다. 대체 우리 보고 어쩌라고?”

우리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3권분립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민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정치 구조다. 그런데 이 세 갈래 권력이 국민 앞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힘 자랑이나 하면서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다.

입법부는 국회 다수당의 눈 밖에 난 공직자들에 대해 걸핏하면 줄줄이 탄핵을 연발한다. 공직자 탄핵은 윤석열 사건을 제외하면 단 한건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못했지만 입법권력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행정부는 입법부가 의결해 넘긴 법률안에 대해 막무가내로 거부권을 행사한다. 아무리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법안이라 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다. “너는 네가 가진 권한을 행사해, 나는 내가 가진 권한을 행사할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하는 식이다. 이러니 고래 싸움에 죄 없는 국민만 등 터진다.

3권의 권력다툼 나라를 위기로 내몰아

행정권력이 주어진 권한 범위를 종종 넘어서 혼란을 키울 때도 많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행으로서의 주제 파악이 안 되는지 느닷없이 대통령 몫의 인사권(헌법재판관 지명)을 행사하겠다고 나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일이 대표적이다. 대선 관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할 그는 급기야 대행 자리를 내던지고 출마선언을 하더니, 경선을 통해 결정된 남의 정당 공식 후보에게 ‘단일화 운운’하며 후보 자리 내놓으라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 자리는 그의 무책임한 처신 때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대행, 즉 대대대행이 맡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그는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래도 사법부는 다를 것으로 여겨왔다.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을 희한한 사유를 들어 ‘구속 취소’ 한다며 풀어줬을 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사법시스템 차원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다. 헌재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면 법관의 양심은 살아있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가 정치에 오염되어 편향적으로 결정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최소한 없지 않겠나 하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런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희대의 판결이 나와 나라를 혼돈에 몰아넣는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이재명 후보의 첫 번째 사법리스크로 꼽힌 이 사건은 지난 3월 말 2심 재판부가 완전 무죄를 선고하면서 리스크가 해소되었다는 게 법조계 상식이었다. 검찰이 2심 결과에 불복해 상고하겠지만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되어 심리가 진행될 때면 이미 대선 시점이므로 시간 관계상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빛의 속도로 대담한 판결을 내렸으니 난리가 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다. 법관 생활 30년이라는 어느 판사는 “내 생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초고속 진행”이라는 비판 글을 실명으로 올렸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2명은 “설득과 숙고의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 공정성 시비도 문제지만 당사자와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이번 판결이 설득과 숙고의 기간을 거치지 않은 날림 판결임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절차보다 심각한 문제는 판결 내용과 그 의도다. 현 사법시스템에서 대법원이 유죄 판단을 내린 사건이 무죄로 뒤집힐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 법원은 파기환송심 일정을 최대한 당겨 대선 전 선고까지 마치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이 끝은 아니다. 피고인은 여기서도 상고할 권리가 있고 그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판결하기까지 최소한의 시일이 소요되는 것은 대법원장도 어쩌지 못한다. 그 사이 6.3 대선은 치러질 예정이니 이미 당내 경선을 통해 법적 후보 자격을 취득한 특정인의 출마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당자자와 국민납득에 실패한 대법원 판결

그렇다면 무슨 의도일까.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경구(警句)를 떠올려 생각해보면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정 후보에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고 “그를 찍으면 당선 무효가 될 수 있다. 자 어쩔래?” 하는 메시지다. 사법부가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마저 훼방 놓는 이 어지러운 세상, 정말 국민하기 힘들다.

신한대 특임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