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조의 미중기술경쟁 톺아보기

‘혁신의 미국, 구축의 중국’ 기술패권의 미래는 어디로

2025-05-08 13:00:23 게재

미국은 조 바이든행정부 시절인 2023년 8월 9일(현지시각)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3개 분야의 중국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제14105호)을 발표하면서부터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그러나 바이든정부가 중국을 옥죄려던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는 되레 중국의 기술굴기를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된 것은 아닌지 회의론이 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각) 2022년과 지난달 찍은 위성사진을 비교하며 화웨이가 중국 선전시 관란 지역에 3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을 넘어 반도체 설계부터 장비 제조 후공정(패키징)까지 전 공정을 자국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직 계열화’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화웨이는 이 중 한곳을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2곳은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시캐리어(SiCarrie)와 메모리칩 제조업체 스웨이슈어(SwaySure)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화웨이가 두업체와의 연계를 부인했지만 물밑으로 투자 유치와 인력과 기술 공유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캐리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리소그래피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다. 전통적으로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첨단 칩을 만들려면 기술력이 고도화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필요하다. 현재 이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제조 판매하고 있고 미국의 수출규제로 중국에는 판매가 금지돼 있다. 화웨이가 시캐리어에 대한 투자 협력을 강화했다는 건 자체적으로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다른 업체인 스웨이슈어는 D램 제조업체다. 현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적층 패키징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첨단 제조장비에 더해 화웨이를 중심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자급하고 독자적인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단 전략으로 볼 수 있다. FT는 화웨이가 칩 설계 업체인 엔비디아와 제조장비 업체 ASML, 메모리칩 제조업체 SK하이닉스, 파운드리의 TSMC를 대체할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우리 바로 뒤에 아주 가까이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에 미국 기업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 세계 AI 칩 패권을 쥐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정부의 수출제한 정책으로 기술 시장에서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CEO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술 콘퍼런스인 ‘힐 앤 밸리 포럼’에 참석해 “중국은 (AI 칩 분야에서) 미국에 뒤처지지 않았다. 중국은 우리 바로 뒤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또 화웨이를 콕 집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기업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미국의 AI 기술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걸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선전 반도체 기지 구상은 계획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도 화웨이는 위기를 기회 삼아 첨단 기술 개발에 성공해왔다. 미국정부가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자 자체 OS인 ‘훙멍(鴻蒙, Harmony)’을 개발했고 현재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 수입이 막히자 자체 AI 칩 개발에도 속도를 올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화웨이는 엔비디아를 대체해 이달부터 자사의 최신 AI 칩 프로세서 ‘어센드(Ascend) 910C’를 고객사에 대량 공급할 계획이다. 어센드 910C의 추론 성능은 아직 엔비디아의 주력 AI 칩인 H100의 60% 수준이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웨이가 H100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갖춘 ‘어센드 910D’를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의 훼방으로 막혀있던 첨단 장비와 패키징 기술 등이 결합할 경우 기술자립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미래 기술 경쟁의 세가지 핵심 전장

미국 첨단기술 관련 싱크탱크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2021년 설립한 초당파 싱크탱크인 특수경쟁연구프로젝트(SCSP)는 ‘2025년 미중 기술격차 보고서(2025 Gaps Analysis Report)’를 통해 미중 첨단기술 패권경쟁의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뤘다. 보고서는 12개 핵심 기술 분야인 인터넷 플랫폼(소셜 미디어, 모바일 운영체제), 반도체, 합성생물학, 융합에너지, 퀀텀 컴퓨팅, 첨단 배터리, 5G, 상업용 드론, 첨단 제조, AI, 차세대 네트워크(저궤도 위성), 바이오의약품의 미중 간 기술격차를 분석하고 있다.

12개 첨단기술 중 중국이 우위에 있는 기술은 첨단 배터리 5G 상업용 드론 첨단 제조 기술 등 4개 분야이고, 미국이 우위에 있는 기술은 인터넷 플랫폼 반도체 합성생물학 융합에너지 퀀텀 컴퓨팅 5개 분야다.

양국이 경쟁 중인 분야는 AI 차세대 네트워크(저궤도 위성) 바이오제약 3대 분야다. 미국이 우위에 있으나 경쟁력을 잃어가는 분야는 인터넷 플랫폼 융합에너지 퀀텀 컴퓨팅 3대 분야이고,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 합성생물학이다.

우열을 다투고 있는 분야 중에 미국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분야는 차세대 네트워크 분야다. 중국은 5G와 상업용 드론에서 미국을 앞서면서 격차를 벌리고 있고, 첨단제조 기술에서 미국에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첨단 배터리에서는 우위가 약화되는 중에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5개 분야 중 3개 분야에서 경쟁력이 약화되는 중이고, 중국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4개 분야 중 1개 분야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첨단 기술제품의 소재인 희토류도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 생산 비중에 있어 중국은 흑연 82%, 인니는 니켈 52%, 호주는 리튬 45%, 콩고공화국은 코발트 65%를 점유하고, 제련에 있어 중국은 리튬 65%, 코발트 77%, 흑연 91%, 니켈 28%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강력한 제조 기반과 국가 주도 투자로 상업화와 규모에서 앞서며 미국은 역동적 민간 생태계와 창의적 연구로 혁신을 주도한다. 중국이 제조 인프라를 토대로 한 ‘구축 중심’ 접근법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상황에서 SCSP는 미국의 선택지를 명확히 제시한다. 미국은 혁신역량과 함께 산업적 구현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SCSP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성공은 기술을 체계적으로 확장하고 산업 전반에 배포하는 능력에서 비롯됐다.

미국이 현재 선도하는 분야에서도 통합적 접근 없이는 태양광 패널이나 드론처럼 주도권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앞으로의 기술패권 경쟁에서는 혁신을 창출하는 국가보다 이를 빠르게 산업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키는 국가가 승자가 될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의 방정식이 변하고 있다

SCSP 보고서는 기술패권 경쟁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여섯 가지 핵심전략을 제시한다. ① 혁신 기술을 대규모로 상업화할 수 있는 산업 역량 강화 ② AI 데이터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해결할 에너지 인프라 혁신 ③ 첨단 제조업 재건을 통한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확보 ④ 6G, 양자 기술, 합성 생물학 등 차세대 기술 표준 선점 ⑤ AI 및 바이오 분야의 오픈소스 전략과 민관 협력 활성화 ⑥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제약 등 핵심 분야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중국 의존도 축소다.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중국에 의존하는 신흥개도국이 많아졌다. 중국이 2024년부터 사정거리 1만2000㎞에 달하는 ICBM을 발사하여 목표물에 명중시키는 등 그간 숨겨놓은 힘을 과시한 것은 불가피한 행동이었다. 교역상대국과 중국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힘을 과시해 중국에 의존하더라도 경제와 안보에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박상조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