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노역장유치 폐지하고 일수벌금제 도입하자

2025-05-08 13:00:37 게재

현행 형벌의 주류는 구금형(징역 금고 구류)과 재산형(벌금 과료 몰수·추징)이다. 전자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 구금의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재산을 빼앗아 경제적 고통을 주는 것이다.

소액의 벌금형을 받은 생계형 경미범죄자들이 벌금을 못내서 노역장에 유치되고 있다. 벌금형의 본질은 경제적 고통인데 그 본질에 맞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법원 통계를 보면 2022년 한해 법원이 부과한 형벌 중 약 70%가 벌금형이고 이중 500만원 이하가 86%에 이른 반면 1000만원 초과는 0.3%에 불과했다. 벌금형이 10건이라면 이중 약 9건이 소액이다.

언론보도에 나타난 검찰의 벌금형 집행현황에 따르면 벌금형을 현금으로 집행한 비율은 약 20%에 불과한 반면 노역장유치로 집행한 비율은 약 60%에 이른다. 벌금형 집행이 10건이라면 이중 6건이 노역장유치되고 있는 것이다. 고액벌금 미납자들의 이른바 ‘황제노역’도 문제다. 노역장유치로 대체되는 1일 벌금액이 약1800만원인 경우도 있다.

서민고통 외면하는 벌금제도 개선 필요

노역장유치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경제적 고통을 구금의 고통으로 전환하고 벌금형의 본질을 훼손한다. 노역장유치 최장기간은 3년이므로 벌금형 액수가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불공정성도 커진다. 고액 벌금형 범죄자는 벌금 납부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소액 벌금형일지라도 생계형 범죄자에게는 노역장유치가 납부를 심리적으로 강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납부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납부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노역장 유치자는 1일 평균 1500명으로서 교정시설 과밀수용의 주범이 되고 있다. 노역장 유치로 인해 한해 평균 3조7600억원의 벌금을 징수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해 평균 438억원이 노역장유치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국가재정의 손실이다.

노역장 유치자는 흔히 수형자나 미결수용자와 함께 수용되므로 단기 자유형의 폐해를 안고 있다. 또한 노역장유치 과정에서 수용자에게 이루어지는 분류 및 처우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건강 문제도 생긴다. 심지어 노역장이나 노역 종류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실제로 노역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납부능력에 따라 벌금형의 형벌로서 기능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 구금의 고통은 경제적 강자건 약자건 형벌로서 기능적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경제적 고통은 경제적 약자에게 생존을 위협한다. 같은 범죄라 하더라도 경제적 약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따르며 이는 책임원칙에 반하는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다.

동일한 범행일지라도 그 불법에 대응한 책임의 범위 안에서 경제력의 차이 등 범죄인이 처한 상황을 참작해 형벌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원칙에 부합한다. 납부능력에 따라 벌금형의 기능적 의미가 달라지는 불공정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재산과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일수벌금제(日收罰金制)’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행 총액벌금제로는 경제력의 격차를 반영하기 어렵다. 일수벌금제는 노역장 유치일수 산정을 거꾸로 하는 것과 같다. 범행의 불법에 상응한 가상적 구금의 일수를 정한 후 여기에 범죄인의 일일 경제력을 곱해 벌금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노역장유치는 폐지되어야 하지만 존치하더라도 일수벌금제가 도입되면 그 일수를 환산할 필요가 없고, 황제노역도 문제되지 않는다. 벌금형에 대해서 양형기준이 없어서 문제인데 일수벌금제가 도입되면 구금형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는 양형기준을 벌금형에 대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벌금형의 양형기준 마련은 벌금형의 집행유예제도 활성화와 일부집행유예제도 법제화의 토대가 된다.

새정부 벌금형제도 개선 관심 가져야

일일경제력의 공정한 산정의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노역장유치를 위한 일일 벌금액 산정보다 공정하고 수월하다. 이미 소득과 재산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및 과세체계가 마련되어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된다.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정치라면 6.3 대선 후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벌금형제도의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수벌금제도는 도입하고 노역장유치제도는 폐지하자. 그래야 벌금형이 그 본질에 부합하게 되고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형벌력이 확보된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