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개편’ 대선 공약에서 빠졌지만 ‘살아있는 카드’
더불어민주당 논의 진행 후 일단 보류
기획재정부 개편과 맞물리면 진행 가능
금융정책·감독, 소비자보호 분리 쟁점
내달 3일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 정부 출범할 때마다 불거졌던 금융권 주요 이슈지만 실행된 경우가 없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과 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리면 추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체계 개혁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12일 공개된 이 후보 공약에는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조직개편 내용은 빠져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기재부와 관련해 “정부 부처의 왕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히 있다”며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서 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조직 개편을 예고했지만 공약에서는 뺀 것이다.
13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의 대선 공약을 작성하면서 기획재정부 해체 등 정부조직개편이 국민들의 표심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제외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분리해 별도의 조직(차관급 수장의 처 또는 청)을 설립하는 방향은 정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 외에 구체적인 조직개편 내용은 대선 이후로 보류된 상황이다.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이 빠지는 만큼, 기재부를 어떤 방식으로 개편하느냐에 따라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금융감독시스템은 금융위원회(감독정책)와 금융감독원(집행)으로 나누어진 이원화된 구조다. 문제는 금융위가 감독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정책을 함께 맡아 상대적으로 산업정책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감독기능이 약화됐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일 열린 토론회 개최 취지에 대해 “현행 금융감독체계는 금융위가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함께 수행함으로써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소비자 보호 간 이해상충 문제가 지속돼 왔다”며 “이로 인해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등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위와 금감원의 이원적 구조로 인해 금융감독집행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이 금융감독정책에 신속히 반영되지 못하고,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책임성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위에서 금융감독정책을 빼내는 방향이다.
이 때문에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이 빠지면 금융위의 금융산업정책 기능이 기재부에 흡수되거나, 기재부의 국제금융 업무를 금융위로 이관해서 금융산업정책 전반을 한 부처에서 담당하게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기재부의 권한 축소라는 방향에서 보면 후자가 더 유력할 수 있다.
금융위가 금융감독정책에서 손을 떼게 되면 금감원이 이 기능을 수행해야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금감원도 금융건전성감독원(금융기관 인허가 및 건전성 감독)과 금융시장감독원(금융기관 영업행위 규제 및 금융소비자보호 업무)으로 분리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어떻게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할지에 대해 이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의는 활발히 진행됐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부처를 여러 개로 쪼개는 소부처 중심으로 가고 대통령실이 이를 컨트롤하는 구조였다”며 “정부조직개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선이 끝난 후 한 달 이내에 조직개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지 못할 경우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를 지낸 금융권 인사는 “정권 실세들이 주요 보직에 임명된 상태에서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며 “대통령이 얼마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느냐에 달려있고, 초반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