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3개국 주요 선거서 친유럽파 약진

2025-05-19 13:00:01 게재

친트럼프 극우세력에 제동 루마니아·폴란드 대통령선거

포르투갈 총선서 민심우위

지난 주말 사이 유럽에서 잇따라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친유럽파가 크게 약진했다. 유럽연합(EU) 통합과 민주주의 가치를 지지하는 중도·친유럽 진영은 극우·친트럼프 성향 세력을 상대로 선전하며 정치 지형에 뚜렷한 변화를 예고했다.

트럼프식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정당들이 장악하던 유럽 내 여론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다.

18일자(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에 따르면 루마니아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무소속의 친유럽 성향 니쿠쇼르 단 부쿠레슈티 시장이 극우 민족주의 정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개표율 99% 기준으로 단 후보는 54.1%를, 시미온 후보는 45.9%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는 시미온이 41%, 단이 21%로 큰 격차를 보였으나 결선 투표율이 64%로 크게 오르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루마니아는 총리가 내치를, 대통령은 외교·국방을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다. 수학자 출신인 단 당선자는 부동산 불법개발 반대 시민운동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반부패, 디지털 행정 개혁, 친EU 외교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당선 직후 “정치는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것”이라며 “우리가 어려울 때 오늘을 기억하자”고 밝혔다.

반면 시미온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루마니아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결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우리가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결과 수용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단 당선에 대해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EU 지도부는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과 통화한 사실을 밝히며 “조작 시도에도 루마니아 국민은 민주주의와 유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루마니아 국민이 강한 유럽 속 개방과 번영을 선택했다”고 평가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루마니아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치러진 폴란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도 친EU 성향 여당 후보가 선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민플랫폼(PO) 소속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이 30.8%를 얻어 극우 성향 법과정의당(PiS) 지지를 받는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29.1%)를 근소하게 앞섰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 투표는 내달 1일 실시된다.

트샤스코프스키 후보는 EU와의 협력 강화, 낙태권 보장, 성소수자 인권 보호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번 대선은 서방 자유주의와 동유럽 민족주의 간 선택”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나브로츠키 후보는 유럽법보다 자국 헌법이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난민협정 탈퇴, 트럼프와의 협력 확대 등을 강조했다. TVP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선 가상 대결에서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49%, 나브로츠키 후보가 45%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이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도 같은 날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 AP와 AFP 보도에 따르면 루이스 몬테네그루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민주동맹은 32.7%를 득표해 230석 중 최소 81석을 확보하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과반 의석에는 못 미쳐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하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 셰가(Chega)는 22.6%를 득표해 최소 54석을 확보하며 제3당으로 부상했다.

AP통신은 “셰가의 약진은 이민자 유입에 대한 반감과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불만이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은 몬테네그루 총리의 기업 비위 의혹으로 인해 의회에서 불신임된 후 재선거로 치러졌다. 총리는 의혹을 부인했고, 다시 1당 지위를 확보했지만 셰가와의 연정 가능성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루마니아, 폴란드, 포르투갈의 선거 결과는 EU 내 극우 포퓰리즘 확산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계심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안보와 연대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친유럽 세력의 약진은 향후 EU의 통합 전략과 대러 정책에 힘을 실어줄 정치적 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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