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0년 집념이 이뤄낸 ‘에너지 자립 혁명’
초고압 전력망 확충 박차
전기 절반이 태양광·풍력
전기차 1250만대 결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에너지 체계 ‘대전환’을 지시한 지 10년, 중국은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중심축을 옮긴 ‘전기국가(electrostate)’로 변모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거대한 전력망, 초고속 철도,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이제 단순한 ‘탈탄소 정책’이 아닌, ‘전력 패권’을 겨냥한 중국판 전략무기로 진화하고 있다고 지난 12(현지시간) 전했다.
중국은 한때 석유와 석탄 수입에 의존해온 전형적인 에너지 취약국이었다. 대만해협과 말라카 해협 등 불안정한 외부 공급망에 생존을 의지하던 중국은, 에너지 안보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올려놓고 전기화에 착수했다. 시진핑 주석은 “낙후된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전기화는 단순한 발전 방식의 전환이 아니었다. 산업구조·교통체계·전력망까지 아우르는 ‘국가 시스템 재설계’였다. 중국은 이후 10년간 청정기술 산업에 1조달러 가까운 자금을 쏟아부었다.
◆전기차·전력망·풍력터빈까지…숫자로 본 결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단연 전기차다. 올해 중국 내 전기차(EV) 판매량은 12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로, 사상 처음으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CATL과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매출의 5% 이상을 소재·공정 R&D에 재투자하면서 글로벌 시장 가격을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수송과 저장 기술에서 빠른 전환이 이뤄지는 가운데, 전력망 확충은 전체 전기화 전략의 중추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전력 인프라에 8000억달러(약 1100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초고압(UHV) 송전선 40여개를 완성해, 신장·간쑤의 태양광·풍력 전력을 동부 공업지대로 공급하고 있다. UBS는 올해 전력망 설비투자가 GDP의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 생산 전환도 전략적 계산 아래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외부 에너지원에 대한 전력 공급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발전의 중심축을 저탄소 에너지로 옮기고 있다. 전체 발전설비 용량은 3300GW(기가와트)를 넘었고,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수력·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은 자국 내 생산·설비·시공이 모두 가능한 분야로, 외국 의존 없이 기술 자립이 가능한 점도 적극적인 전환을 뒷받침했다.
중국에는 여전히 세계에서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의 80%가 집중돼 있지만, 동시에 대형 태양광 프로젝트의 70%도 추진되고 있다. 해상풍력 발전 단가는 2020년 MWh당 95달러에서 2024년 55달러로 하락해 석탄보다 싸졌다고 맥킨지는 보고하고 있다.
◆수출까지 겨눈 ‘전력공장 중국’= 중국은 국내 수요를 넘는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 이후 중국 기업은 200건 이상, 총 1560억달러 규모의 해외 청정기술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00~2021년에는 개발도상국 대상 핵심 광물 확보 목적의 대외 대출만 570억달러에 달했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유엔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세계 최대의 재생에너지 시스템과 가장 완성도 높은 신에너지 산업망을 구축했다”고 선언했다. 베이징은 이제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에너지 기술 수출을 통한 국제 표준 주도까지 노리고 있다.
◆‘트럼프 관세’가 전기혁명 불 지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전기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급망 분리 전략 속에서 더 속도를 냈다. 수출 제약이 중국 기업을 내수 전환으로 이끌었고, 이는 지역 산업과 지방정부의 전기 인프라 투자를 자극했다. 그린피스의 야오이 프로젝트 리더는 “미국의 관세는 오히려 중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역설적 동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컨설팅업체 컨트롤리스크의 앤드루 길홈은 “중국은 리스크 회피와 회복탄력성 면에서 타국보다 5년 이상 앞서 있다”며 “더 이상 이를 자립경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략적 계산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자립을 향한 10년의 집념이 만든 전기화 혁명. 중국은 이제 전기를 무기로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