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대주주 보수’와 ‘개미투자 진보’
며칠 전, 조선일보 1면과 8면은 ‘1400만 개미 표심 업고, 행동주의 펀드의 정치세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투자자와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은 6.3 대선을 앞두고 7대 정책을 제안했다. ①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도입 ②자사주 소각 의무화 ③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및 세율인하 ④자회사 상장 원칙금지, 예외시 모회사 주주보호 방안 마련 ⑤계열사 합병시 공정가치로 평가 ⑥집중투표제 의무화 ⑦상장회사의 밸류업 계획발표 의무화가 그 내용이다. 민주당 대선공약에는 이 중에서 ⑦번을 제외한 내용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주식시장 활성화에 대한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의 정책 제안은 주식회사를 채택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장하준 교수의 국회 강연을 인용하며 “주주환원율이 90% 정도가 되면 우리도 (미국처럼) 끝나는 것”이라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한국의 주주환원은 ‘세계 꼴찌’ 수준
조선일보는 지나친 주주환원을 비판했지만, 한국의 주주환원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주주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주주보호와 주주환원이 적극적일수록 기업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국가별 배당성향을 비교했는데, 조사 대상 16개 국가 중에서 한국은 ‘꼴찌’였다. 한국의 배당성향은 27.2%인데, 이는 남아공 51.7%, 인도 37.9%보다 낮다. 조선일보 비판은 주주환원율이 세계 꼴찌에 가까운 한국에 대해 주주환원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고 경고하는 꼴이다. 마치 투표권이 없는 독재국가에 대해 민주주의를 하면 포퓰리즘이 창궐해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하는 꼴이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제도의 핵심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답게 작동하는 핵심지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장경제, 이윤추구, 재산권 보호, 그리고 주식회사 제도를 꼽을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의 주식시장은 ‘악명’이 높다.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를 흔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표현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은 낮은 배당성향과 대주주들이 일반 투자자들의 재산을 빼돌리는 각종 약탈행위를 꼽을 수 있다.
대주주의 소수 주주에 대한 약탈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한 세습,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자사주를 활용한 지분교환과 자사주의 마법,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활용한 사익챙기기, 공익법인과 비상장 기업을 활용한 재산 빼돌리기 등이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행태에는 ‘글로벌 대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가장 유명한 사례는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을 했던 LG에너지솔루션 사태였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소수 주주의 재산권 약탈이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법을 둘러싼 정치적 격돌
정치는 그저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기도 한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한국 정치의 대결구도를 조망해보면, 산업화 민주화 복지국가를 둘러싸고 전개됐다. 산업화는 보수가 주도했고, 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진보가 주도했다.
6.3 대선에서 한가지 전선은 분명해졌다. 국민의힘은 ‘대주주’ 입장에 우호적이다. 민주당은 ‘개미투자자’ 입장에 우호적이다. 주식 투자자는 1400만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31%, 2022년 대선 투표자의 41%에 달하는 유권자 집단이다.
자본시장 선진화 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법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 정치의 4번째 대결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