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카슈미르 지정학의 귀환과 미중 전략경쟁

2025-05-22 13:00:02 게재

인도-파키스탄의 해묵은 갈등에 강대국 세력정치가 주입되면서 카슈미르가 새삼 유라시아 지정학의 민감한 무대로 부상했다. 뿌리 깊은 영토갈등과 종교대립에 따른 ‘주변지대’(Rimland) 화약고의 분출 현장이다. 인더스강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도 첨예하다. 그래서 카슈미르 분쟁의 해결은 멀고 험난해 보인다. 배후에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인-파 충돌이 전면전을 피하면서 불안한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휴양지에서 힌두교 관광객 26명이 무슬림 저항전선(TRF) 민병대원들에게 피살되자, 인도군은 테러조직과 연계된 위장단체 소행이라며 5월 7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위치한 8곳의 무장조직 본거지를 타격했다. 이른바 ‘신두르(Sindoor) 작전’이다.

87시간의 무력충돌은 군사기지와 종교시설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가하며 전면전 직전까지 갔다. 인도군이 파키스탄 핵사령부에 인접한 누르 칸 공군기지를 공격하면서 핵 충돌 우려를 불러왔고, 파키스탄도 인도령 카슈미르의 26개 군사기지에 반격을 가했다.

인-파 양국은 1947년 1965년 1971년 1999년 모두 네 차례 전쟁과 수많은 국지전 충돌을 벌였다. 2019년에도 자살 차량폭탄 테러에 인도 군인 40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전면충돌 위험 지경까지 갔었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거대한 지정학 게임

이번 충돌은 미국의 중재로 일단 군사행동 중단에 합의했다. 양국의 강성 지도자는 국내정치용 ‘정신승리’가 필요하지만 전면전을 원하는 건 아니다.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정치적 배경으로 잠무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무슬림 주민을 탄압해왔다.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도 국내정세 불안 때문에 강경자세에서 물러서기 어렵다. 이에 미국의 개입은 통제불능으로 확전을 막는 정도가 최선이다.

이처럼 수시 반복되는 인-파 ‘저강도 전쟁’의 배후에는 과거 냉전시기 미-소 간 역학관계가 얽혀 있고, 현재는 미중 경쟁의 지정학이 연계되어 있다. 특히 인도가 중국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새 변수가 됐다. 카슈미르에서 인도-파키스탄-중국의 소(小)삼각 갈등이 펼쳐지는 가운데 인도양에는 미국-인도-중국 간 대(大)삼각 구도의 전략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는 중국에 맞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파트너다. 4자 안보대화(QUAD)의 중요한 협력 대상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 미국은 비동맹 그룹 리더였던 인도와 줄곧 거리를 둬왔다. 오히려 파키스탄과 동맹을 유지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 중국과 함께 아프간 저항군 무자헤딘을 지원하며 반소련 삼각연대를 구축하기도 했다.

1998년 파키스탄 핵실험 제재로 소원해졌지만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보급로 확보를 위해 다시 파키스탄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미국에게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는 사라졌다. 미국은 2008년 인도와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졌다.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미국이 떠난 곳에는 어김없이 중국이 진출한다. 미국이 동맹을 파기하고 군사원조를 중단하자 파키스탄은 중국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 체계도 중국산으로 대체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전천후 전략협력 동반자관계’를 맺고 중-파 경제회랑 건설에 620억달러를 투입했으며, 그 대가로 인도양의 과다르항 운영권을 43년 간 확보했다.

미-중 대리전장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

이번 충돌에서 프랑스산 최신예 라팔(Rafale) 포함 인도 전투기 5대가 파키스탄의 중국산 J-10C 전투기와 PL-15E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과 중국 신무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충돌의 배후에 미-중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서방-인도 플랫폼과 중국-파키스탄 특수관계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무기시험 게임이 펼쳐진 셈이다. 카슈미르 문제는 단순히 인-파 대결의 장이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이 투영된 복합지정학의 축소판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중동으로 전선이 분산된 미국은 카슈미르 문제 해결에 개입할 의지도 여력도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는 사라졌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것이 국제관계 ‘정글의 법칙’이다. 그런 점에서 인-파 갈등에 숨겨진 역학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지정학에 주는 함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 전 중국 심양주재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