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분열의 정치, 신뢰의 정치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언변이 좋았다. 재화를 많이 모아 공자의 천하주유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했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재상까지 지냈다. 어느 날 자공은 스승과 문답했다.
“스승님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는 무엇입니까?” “식(食)과 병(兵)과 신(信)이다.” “한 가지를 버린다면 무엇부터 포기해야 합니까?” “병(兵)이다.” “한 가지를 더 포기해야 할 상황이면요?” “식(食)이다.” “밥이 없으면 백성이 굶어 죽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인간사회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신뢰가 밥보다 중요하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논어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일화다. 왕이 나라를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점을 강조했다. 군왕이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순자(荀子)가 “민심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水則載舟 水則覆舟)”고 말한 까닭이기도 하다.
리더에 대한 신뢰 민심에 투영
리더에 대한 신뢰는 민심에 투영된다. 리더가 믿음직하면 국민이 행복하지만, 그 반대면 불안하다. 풍향계는 여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럭비공 같은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를 요동치게 한다. 미국 국민의 54%가 관세 정책에 반대하고(로이터통신 보도),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졌다(워싱턴포스트 보도). 세계 각국은 트럼프의 ‘입’을 시시각각 주시한다. 정책의 투명성(transparency)을 종잡을 수 없다.
4월 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1061일’ 동안의 국정 지지도가 낮았다. 굳이 여론조사 몇 %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김건희 여사 문제, 의대 증원 파문, 돌발 계엄 등 여러 일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은 충돌했고 협치는 실종됐다. 국민은 갈라졌다. 민심은 싸늘했다.
윤 전 대통령의 치명적 패착은 신뢰 상실이다. 민생(食)과 안보(兵)도 그렇거니와 대한민국에 대한 신용(信)을 흔들어 놓았다. 국제적 신(信)이 옅어진 건 뼈아프다.
문득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이 떠오른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작은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위험사회를 비유한 말이지만 국정도 마찬가지다. 큰일 전에 경고성 징조와 징후가 나타나고, 방치하다가 위기를 맞게 된다. 김건희 여사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일이 이어졌고, 명태균 사건과 계엄 사태가 터졌다. 1:29:300의 ‘윤석열 법칙’이었다.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5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다”라고 말한 게 1995년이다. 30년이 지난 2025년의 정치는 더 퇴보했다. 4류가 아니라 5류다. 국민과 기업과 아이들은 저만치 앞서 뛰는데 정치가 뒷덜미를 잡는다.
당리당략과 패권욕이 득실하다. 화해와 타협, 포용과 배려, 공감과 희망의 정치가 없다. 염치는 더더욱 없다. 자성과 쇄신, 신뢰와 도덕성 회복 노력을 하지 않는다.
조기대선 국면의 정치권은 더 후진적이다. 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다. 대선후보는 믿음직스럽지 않다. 후보들이 TV 토론에서 노출한 언사와 품격과 실력이 그랬다. 어떤 후보든, 어떤 정당이든, 어떤 진영이든 이기는 게 이기는 게 아니다. 승자는 국민이어야 한다. 국민은 신뢰를 원한다. 신뢰를 주는 후보, 신뢰는 주는 정당, 신뢰는 주는 정치 말이다.
5류 분열 정치 씻어낼 담대한 지도자 절실
대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요동칠 것이다. 절실한 것이 있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갈등에서 화해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는 일이다.
경쟁자까지 끌어안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라이벌팀(Team of rivals)’ 내각, 넬슨 만델라의 ‘용서와 화합’의 통 큰 정치가 필요하다. 리더보다 더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는 대인(大人), 당리(黨利)보다 민복을 챙기는 위인(偉人), 글로벌 대한민국을 여는 현인(賢人)의 정치가 절박하다.
제1 조건은 신뢰다. 공자가 식(食)·병(兵)·신(信) 중 왜 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겠나. 5류 정치를 탈출해야 할 5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