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대선공약

경사노위 계속고용안, ‘정년 이중구조’ 불러올 것

2025-05-23 13:00:02 게재

정흥준 교수, 국회 토론회서 “노조 협상력 따라 차이, 일률적 연장이 혼란 줄여” … 노사간 불필요한 갈등도 유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계속고용위)는 8일 법정 정년은 현행(60세)대로 하되 2028년부터 퇴직후 일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에 대해 단계적으로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까지 계속고용(정년퇴직 후 재고용)을 의무화하는 ‘공익위원 제언’을 발표했다. 정년연장에 대한 노사의 자율적 합의가 없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 사업주의 재량으로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고용형태를 달리해 계속고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계속고용의무제의 세부유형을 △직무유지형 △자율선택형 △대기업·공공기관 계속고용특례 등 3단계로 제시했다. 직무유지형은 근로자가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기존 직무와 근로시간을 유지하며 계속 일하되 임금은 생산성 등을 고려한 적정임금을 책정해야 한다. 자율선택형은 고령 근로자의 건강이나 안전, 사용자의 경영상 어려움, 신규채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 등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직무와 근로시간을 조정해 계속고용하는 방식이다. 대기업·공공기관에 대한 계속고용특례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대기업·공공기관 일자리 등에서 고령근로자를 해당기업의 관계사로 전적시키는 경우에도 계속고용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허용한다.

계속고용의무제 적용시기는 2028년이다. 올해 관련 입법을 전제로 2027년까지 2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2028년부터 2031년까지 매 2년마다 1년씩, 2032년부터는 매해 1년씩 계속고용 의무기간을 연장하는 식이다. 2033년 65세로 늘어나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같아지도록 했다.하지만 노사는 모두 공익위원 제언을 두고 반발했다.

22일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김주영·박해철·박홍배·서영석 의원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초고령사회 노후소득 공백 해결을 위한 정년연장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경사노위안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8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열린 ‘고령자 계속고용의무 제도화 공익위원 제언’ 브리핑에서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가운데)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에서 계속고용의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년의 이중구조’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며 “계속고용을 ‘의무화’하는 점에서 지금보다 한발 나아간 정책이지만, 정년연장을 보편적 권리로 접근하지 않고 기업의 재량에 넘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사합의라고 하지만 노조 없는 86% 사업장에서는 제대로 된 노사협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정 교수는 “정년은 기존처럼 60세로 두고 정년연장, 직무유지형, 자율선택형 등으로 고용을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노사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법정 정년연장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노조가 가진 교섭력과 기업(기관)이 가진 지불능력이 적절히 타협된 ‘정년연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노조가 없는 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인건비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율선택형’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노조기업과 무노조기업 간 격차는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며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현장직과 사무직 간 차별 논란이 일어나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다보니 직종별 직군별 차별적인 정년제도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근로자대표제도의 모호함 등을 고려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일자리에 대한 대안도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공공기관 계속고용특례에 대해서 “관계사로의 전적이 얼마나 많을지 알 수 없고 공공기관은 관계사도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년을 연금수급연령에 맞춰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65세 이후에는 기업의 필요와 개별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따라 계속고용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업은 정년연장을 보편적 권리로, 노동자는 임금조정 인정해야 = 정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 상 2035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50년 뒤에는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정년연장을 하지 않으면 노동력 부족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기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정년연장이라는 보편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는 고용안정 대신 임금을 조정할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경사노위가 제시한 계속고용의무제도보다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계단에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국회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은 “정년연장이 상위 10~20% 고용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선 안된다”며 “경사노위안은 재고용이란 표현을 피해가지만 재고용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정년제도는 취업규칙을 갖춘 50명 이상 사업장에도 60~70% 도입됐다”면서 “50명 미만 및 5명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과 노동관계법 밖 노동자들은 정년제도가 없는 만큼 또 다른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도 “정년연장은 고령자의 퇴직연령을 증가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라며 “60세 정년연장 이후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이 모두 증가했고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도 기존 49.4세에서 53.1세 또는 54.9세로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모든 노동자에게 65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년을 65세로 개정해야 한다”며 “청년고용은 정년연장과 별개로 심각한 상황이므로 일자리 질 개선으로 청년고용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층과 고령층 당사자의 발언도 이어졌다. 황문찬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활동가는 “정년이 연장될수록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은 더욱 치열해지고 진입 자체가 지연될 수 있지만 정년연장은 우리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임금체계는 단순 기업 내부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전반의 질과 세대 간 신뢰문제이기에 노조도 유연한 임금체계 수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위원장도 “재고용 근로자의 72%가 퇴직 전 임금의 50% 미만을 받으며 85%는 1~2년 단기계약으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며 “법정 정년연장은 노인이 존엄하게 일하고 소득을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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