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행정부 ‘주한미군 감축’ 만지작

2025-05-23 13:00:02 게재

WSJ, 국방관계자 인용 “4500명 재배치”

안보·외교·통상 동시에 노린 ‘삼중 포석’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주한미군 약 4500명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고, 괌이나 인도태평양 지역 내 다른 기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이 같은 계획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아직 공식 보고되지 않았지만 대북정책 재검토 일환으로 마련되고 있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5월 22일 목요일 워싱턴 DC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암호화폐 만찬에 참석한 뒤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한국에는 약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이중 감축 검토 대상은 약 16% 수준이다.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병력 재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보전략 외교협상 경제압박이라는 세 가지 영역을 동시에 겨냥한 포석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이번 검토는 북한을 향한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주한미군 배치조차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협상태도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차 집권 당시에도 북미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은근히 언급하며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 바 있다.

다음은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밀접한 연계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내내 “한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다. 미국 젊은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도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지난해 4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재집권 시 미군철수를 시사했고, 10월에는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사로 유추해보면 병력 감축 검토가 한국 정부를 향한 명확한 방위비 인상 압박 수단임을 시사한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무역협상과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행정부는 그간 안보제공과 경제협력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미국산 방위산업 제품 구매 확대, 농산물 시장 개방, 기술규제 완화 등 주요 통상 이슈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군사전략 측면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조정과 맞물려 있다. 병력을 한반도에서 감축하더라도 괌 등 역내 전략 거점에 재배치할 경우 미국은 한반도 개입을 줄이면서도 중국견제와 지역안정이라는 핵심 목표는 계속 추구할 수 있다. 특히 괌은 중국군의 타격 범위 밖에 있으면서도 동북아시아 분쟁 지역과 가까워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미군 내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크다. 지난 4월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새뮤얼 퍼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 감축이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억제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퍼파로 제독은 “병력 감축은 충돌 억제와 대응 능력을 모두 저해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역시 “나는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한다”며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보다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미국은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를 유지하면서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략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이 수립 중인 새로운 국방전략(NDS) 기조와도 연결된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5월 2일 새로운 전략 수립을 지시하며 미국 본토방어, 중국억제,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를 3대 과제로 명시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평화통일’ 기조를 폐기하고 서울을 ‘주적’으로 규정했으며 올해도 순항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필리핀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게도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의 군사 협력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한미군 감축 검토는 대북정책 조정, 한미 방위비 협상, 통상 압박 전략, 인도태평양 전력 재배치가 교차하는 복합적 사안이다. 트럼프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논의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와 아시아 전체의 안보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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