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그 많던 미국의 밤나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25-05-27 13:00:02 게재

인간의 머리카락 수는 평균 10만개이며 수명은 족히 5년이 넘는다. 중추신경계를 보호하는 두꺼운 머리뼈에 둘러싸여 그러잖아도 혈액의 흐름이 느린 험한 곳에서 머리카락은 꿋꿋이 자란다. 세포들은 거기에 멜라닌 색소를 더하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큰아버지가 집에 하나 밖에 없는 부엌칼로 ‘백호’를 쳐주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벌거벗고 마루에 앉아 고개를 내미는 것 말고는.

그러다 읍내로 이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처음으로 나무판을 댄 이발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때 이발비는 30원, 시냇가 초가집 마당에 높다란 의자를 놓고 간판 없이 머리를 자르는 곳은 값이 10원이었다. 싸게 머리를 깎고 냇가에서 머리를 감은 뒤 얻어먹은 빵의 대가로 필자가 얻은 것은 ‘기계독’이었다.

알코올 불에 살짝 스친 바리깡(클리퍼)에서 설죽은 곰팡이가 필자 두피에 슬그머니 내려앉았던 모양이었다. 허연 곰팡이 무리가 자리한 곳은 가려웠다. 박박 머리를 감아도 나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하도 긁어 대서 핏자국 가실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치료랍시고 별짓을 다 해보았다. 식초를 바르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때의 통증에 몸서리가 쳐진다. 불 켜진 백열등으로 머리를 지진 적도 있었다. 곰팡이 무서운 줄은 어릴 적에 다 배웠다.

호시탐탐 식물생태계 노리는 곰팡이

박사가 되어 세포를 키울 때도 곰팡이와 싸웠다. 어지간한 세균은 항생제를 좀 세게 친 다음 자주 배양액을 갈아주면 제거할 수 있었지만 곰팡이는 달랐다. 현미경으로 곰팡이실 자라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아까울망정 대개 세포를 포기했다.

하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세포도 있었다. 특정 유전자를 없앤 귀한 세포에 효모가 함께 자라는 경우가 그런 때다. 쌀알 모양의 효모가 자라는 속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필자가 선택한 무기는 세포막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약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세포보다 효모에 타격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효모를 없앴으나 세포의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대학에서 일할 때는 근처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 앞 넓은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했다. 가을에는 탐스런 열매를 떨구었는데 생긴 모양은 뭉툭한 밤 비슷했다. 칠엽수 아니면 마로니에 열매였겠지만 청설모 먹잇감으로 바라만 보기에는 열매가 아까워 삶아 맛을 보기도 했다. 무척 썼다. 아, 타닌(tannin).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 밤나무가 없을까?

체스넛(chesnut)과 월넛(walnut) 스트리트가 있었지만 정작 피츠버그에는 밤나무가 없었다. 대신 은행나무는 참 많았다. 그 은행을 탐내는 사람은 필자와 아기 봐주러 온 중국할머니 두어 사람뿐이었다. 알 굵은 놈으로 골라 눈(雪) 맞히고 녹이길 두어 차례, 살을 에는 바람이 가실 무렵 속살이 드러난 은행알을 주워 구워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턱밑샘의 침의 흐름과 함께 남아 있다.

6년 넘는 피츠버그의 삶을 정리하고 보스턴 근교로 이사 갔을 때도 밤나무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필자는 동아시아인들이 베링해를 건널 때 밤나무 열매도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나무는 미국 동북쪽 메인주에서 보스턴과 펜실베이니아를 건너 조지아,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애팔래치아 산맥 9000리를 수놓았다.

밤나무는 인디언과 유럽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의 값싸고 영양 높은 식재료로서, 또 미국 전역을 달리는 전신주 목재로 우뚝 섰다. 뉴욕에는 길거리마다 군밤 장수들이 줄지어 있었고 추수감사절 칠면조 뱃속에는 밤이 그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던 밤나무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때 다시 곰팡이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식물, 곰팡이 감염에 상시 노출

1904년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 밤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밤나무줄기마름병이 20세기 초중반 미국 생태계를 강타했다. 1950년에 이르자 더는 밤을 맺는 나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곰팡이에 저항성이 큰 중국 원산지 밤나무의 유전자를 섞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지만 사라진 숲을 복원하는 건 요원해 보인다. 곰팡이는 남미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감자를 초토화시켰고 동남아시아 바나나를 지금도 호시탐탐 노린다.

한때 필자 두피에 안신(安身)했던 곰팡이는 열에 취약하다. 인간이 정온성을 띤 것이 얼마나 다행이랴. 식물은 대부분 외부온도가 그대로 체온이다. 곰팡이 감염에 항시 노출되었다는 뜻이다. 한 품종 경작은 언제든 위험하다. 곰팡이는 미국에도 한국에도 있다.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