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당직사관 교대하는 대한민국호의 항로

2025-05-27 13:00:03 게재

해군 출신인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미 해군의 오래된 격언이 있다. “당직을 넘겨받은 뒤 30분은 전임자가 설정한 항로를 바꾸지 마라”라는 말이다. 항해 당직사관은 4시간마다 교대한다. 파도와 바람 속에서 전임자가 시행착오 끝에 설정한 항로를 신임 당직사관이 자의적으로 변경하면 함정은 곧바로 요동친다.

이제 대한민국도 ‘당직사관’을 교대할 시점이다. 문제는 매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정책의 단절과 역행이다. 국정이라는 배의 항로를 새 당직사관이 충분한 설명도 없이 혹은 이념적 호불호에 따라 바꾸는 것이다.

정당에 따라 정책 방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국익에 기반해야 한다. 정확한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미래 목적지에 맞춰야 한다. 목적지가 360도라면 어떤 정부는 045도, 다른 정부는 315도로 근접할 수 있다. 지그재그처럼 보여도 큰 틀에서는 미래를 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이 180도와 360도를 오가며 방향을 뒤집는 식이 반복된다면 국정은 제자리걸음하며 국가동력은 소모될 뿐이다.

정책의 연속성이 이념보다 더 중요

미국은 대선기간에도 야당 후보와 참모들에게 주요 안보현안을 공식적으로 브리핑한다. 경쟁관계이지만 미래의 국정책임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시스템 일부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국가안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물론 예외도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만 아니면 돼(ABC, 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내세우며 클린턴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했다. 그 결과 북핵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정권의 이념적 대립이 국가 정책의 연속성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반면 독일은 달랐다. 야당 시절 서독 기민당은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비판했지만 집권 후에는 그 정책을 계승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는 독일 통일이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있어도 국가 항로의 연속성은 존중한 것이다.

정파가 다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한국은 분단국가이자 미·중·일·러 4대 강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수출과 개방을 통해 성장한 우리에게는 시장의 신뢰가 생존조건이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익이 나침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무현정부의 안보·위기관리 체계를 후임 정부는 해체했다. 국가안보의 범위를 군사안보에만 한정하면서 국민 안전은 뒷순위로 밀렸다. 그 결과는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적 위기 대응 실패로 이어졌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남북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를 후임 정부는 부정하고 결국 폐기되었다. 상대가 있는 관계에서 협상과 합의는 ‘연결’의 기반이다. 그러나 상대를 무시한 일방적 ‘부정’은 단절을 뜻한다. 전임자가 설정한 항로는 폐기되고 국정의 배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한국에도 정책의 연속성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예컨대 이명박정부는 남북간 기존 협력사업 일부는 축소하면서도 전임 정부의 개성공단은 유지했다. 지그재그로 나아갔지만 최소한 전임자의 길을 이어가려는 시도는 있었다.

이제 함장인 국민이 당직사관에게 물을 때

우리의 항로는 분명하다. 첫째, ‘1 동맹 3 친선’이다. 한미동맹은 굳건히 하되 중국 러시아 일본과는 각각의 방식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한미일 삼각 협력을 강화했지만 그 반작용으로 북·중·러의 결속도 강화되었다. 국제관계는 항상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둘째,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관리다. 보수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과도 관계를 개선했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그 맥락이 빠진 ‘담대한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남북관계는 힘의 논리보다 일관된 관리와 연결의 논리가 더 중요하다.

정치는 이기는 것보다 잇는 것이 더 어렵다. 윤석열정부가 보여준 ‘연결의 부정’은 우리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역주행이다.

이제 함장인 국민이 묻고 요구해야 할 때다. “당직사관은 목적지를 향해, 안전한 항로를 선택할 것인가?”

이병록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