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 네트워크’ 국무부 장악 논란

2025-05-27 13:00:02 게재

<벤자민 프랭클린 펠로우십>

트럼프 2기 외교관료 조직 대격변 … “전문성·중립성의 국무부 지위 훼손”

26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기념극장에서 열린 미국 재향군인의 날 기념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JD 밴스 부통령(왼쪽 두 번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오른쪽 두 번째), 트레버 브레덴캠프 미합중국 수도권 합동임무군 및 워싱턴 군구 사령관(오른쪽)이 국가 연주에 맞춰 경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루 올로프스키라는 무명에 가까운 인사가 미국 국무부 외교관국 국장 대행으로 전격 임명되면서 워싱턴 정가가 충격에 빠졌다. 외교관국장은 미국 국무부 내에서 외교관 채용과 승진, 인사 정책 등을 총괄하는 고위직으로, 통상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 맡아온 자리다.

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단 4년 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신참이다.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외교관국을 이끌게 된 배경에는 ‘벤자민 프랭클린 펠로우십(BFF)’이라는 보수 성향의 내부 네트워크가 있다고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밝혔다.

BFF는 퇴직 외교관들과 재직 중인 보수 성향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이후 국무부 내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겉으로는 초당파 조직임을 내세우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를 강하게 지지해왔다.

필 린더먼 BFF 의장은 지난해 블로그 글에서 “국무부 관료들이 미국의 주권, 강력한 국경, 공정무역, 다자주의에 대한 회의론을 중심으로 외교를 수행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성향의 외교관 및 공무원은 소수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 그들이 주요 보직에 기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이후 국무부 요직에 오른 BFF 출신 인사만 최소 11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토퍼 랜도 전 주멕시코 미국 대사가 3월 국무부 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이외에도 차관대행, 차관보, 국장급 등 핵심 직위에 다수가 기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부 내부 한 인사는 “이들의 가장 큰 자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에 충성한다는 점뿐”이라며 “전문성과 중립성을 토대로 운영돼 온 국무부가, 이제는 정치적 인사로 내부 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BFF를 MAGA(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성향의 관료 카르텔이란 의미를 붙여 ‘MAGA 딥스테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BFF 공동창립자 사이먼 행킨슨은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식의 ‘딥스테이트’라며, MAGA라는 표현 자체도 너무 강한 정치적 편향을 보인다”고 반박했다.

행킨슨은 과거 국무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국경안보·이민 담당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BFF는 미국 보수 법조계 인맥인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도 밝혔다. 린더먼 의장은 “우리도 같은 작전(playbook)을 따르고 있다”고 했고, 행킨슨은 “그들의 성공을 참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사 변화는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에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1만여명 규모로 440억달러 예산을 가진 국제개발처(USAID) 폐쇄, 캠퍼스 시위 관련 유학생 비자 대량 취소 등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국무부 내 검열 프로그램을 해체하기 위해 대런 비티 전 트럼프 연설문 작가를 공공외교 차관 대행으로 기용했다”고 밝혔다. 비티는 2018년 백인 민족주의자들이 참석한 행사 연설로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그레고리 믹스 의원은 “경험 많은 전문가들을 축출하고 충성파로 교체하는 것은 외교관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부터 ‘딥스테이트’라 불리는 관료 조직의 저항을 비판해 왔으나, 이번 임기에서는 국무부 전반을 자신의 정치 노선에 맞추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FT는 한 미국 외교관의 말을 인용, “외교전문가들이 대거 떠나고 있으며, 이처럼 빠르게 공백이 생긴 적은 없다”며 “국무부가 위험한 급진주의자들에게 점령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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