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임계점 넘어선 국가부채의 경고
케인즈 이후 국가부채는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마법의 도구다. 정부는 세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국채 발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고 복지지출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민간자본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 달성을 위해 국가신용을 바탕으로 차입을 일으켜 경제에 자본을 투입하기도 한다. 국가부채 수준이 낮은 초기에는 대개 낮은 금리와 양호한 경제성장률 덕택에 국가부채는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관리된다.
현대 국가경제는 중앙은행을 포함한 정부 관료들이 이끄는 거대한 호송선단의 양태를 보여왔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정부 엘리트 관료들이 국가 경제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당시의 실상은 급증한 미국정부 부채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던 미국경제를 멋지게 연출해 주었을 뿐이다.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호송선단식 경제는 1970년대에 이르러 급기야 스태그플레이션 촉발 등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만이 주축이 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큰 세력을 구축해 케인즈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실제 세계의 작동방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부채에 중독된 각국 국가경제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각국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여전히 미국 연준 등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등 결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코로나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쓰러져가는 각국의 실물경제는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간신히 의지하고 있다. 경기부양 소요 자금 상당액이 국채 발행으로 조달되는 점에서 국가경제는 이제 부채에 중독되어 있다.
국가부채의 중독성은 마약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기분 좋을 정도로 서서히 하지만 은밀하게 빠져들도록 한다. 하지만 이미 중독되어 버리면 결코 헤어날 수 없다.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더 강력한 마약이듯이, 국가부채에 중독된 정부에게 국가부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더 많은 부채다.
실물경제에서 정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수록 정치인 관료 기업과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이 정부 부문에 의존하게 된다. 정치인은 더 많은 득표를 원하고, 관료는 더 높은 지위와 영향력을 갈망하며, 기업은 더 많은 정부 발주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더 많은 복지지출을 바라기에 국가 경제에서 정부 부문의 비중을 줄이고 국가부채를 줄이는 것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에서 극소수 공매도 세력 외에 주가하락을 원하는 경영진과 투자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단기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국가 재정과 부채에 대한 치명적 의존성이 국가 경제의 관성으로 작용하면서 국가부채의 위험 신호가 크게 울리더라도 경제주체들은 구조적 변화를 거부한 채 우왕좌왕하게 된다.
복잡계에서 변화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 시스템이 급격하게 붕괴하거나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발생한다. 국가재정 또한 이와 같다. 일정 수준의 부채까지는 정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부의 이자부담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서고 투자자 신뢰가 무너지며 통화정책이 한계에 도달할 때 국가 재정은 돌연 ‘지속가능성’의 한계를 넘어버린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은 결코 한꺼번에 닥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애써 눈감고 있는 것뿐이다. 다만 진실의 피드백이 지연될수록 축적된 복원력은 더 폭발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새 정부 비효율적인 재정 정책 삼가야
부채에 의한 번영은 큰 고통 없이 성취되기에 풍요롭게 느껴지는 집단적 환상에 불과하다. 흔히 실질적 생산성 향상 없이 돈 잔치로 끝나버리고 만다. 감당할 수 없는 부채로 이뤄진 번영의 귀결은 거대 위기일 뿐이다. 또한 이것은 미래 소득을 현재 세대가 앞당겨 쓰고 현재의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미루는 세대간 불공정 문제를 야기한다.
올 6월 집권하게 될 새 정부는 미국과 일본 국채시장이 국가부채 공포로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에 경각심을 가지고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한 우리 정부 재정에 비효율적 부담을 초래하는 정책 도입을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