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탄소감축이 자산이 되는 ‘탄소의 경제학’

2025-05-28 13:00:01 게재

기후위기의 속도는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1.2℃ 이상 상승했으며 현재의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경 1.5℃ 임계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과학계의 공통된 경고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여파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해수면은 금세기 말까지 최대 1m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방글라데시 인도 베트남 등 저지대 인구 약 8억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 또한 극한 기상현상은 2030년까지 연간 560건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농업 식수 기반시설 전력망, 심지어 보험 및 금융시장 전반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기후위기 앞에서도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실적은 선언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상태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3 배출 격차 보고서(Emissions Gap Report)’에 따르면 현재 각국이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모두 이행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구 평균기온은 금세기 말까지 2.5~2.9℃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파리협정의 목표인 1.5℃ 이내 제한과는 현저한 괴리가 있으며 사실상 현재 이행 수준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를 2019년 대비 최소 42% 줄여야 한다는 과학적 권고와도 맞지 않는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574억CO₂e(이산화탄소 환산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팬데믹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UNEP는 2023년 보고서에서 현재 이행중인 정책 수준으로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대비 단 4% 정도만 감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1.5℃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최소 42% 감축에 비해 10%에도 못 미치는 실적으로, 목표 대비 이행률이 사실상 1/1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감축이 이득이 되는 시장시스템 구축

‘정책-이행-성과’ 간의 구조적 괴리는 기술개발 지연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탄소감축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동기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서 탄소의 감축가치를 ‘실질적 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즉 현재 대부분의 기업은 탄소를 ‘감축해야 할 대상’으로는 인식하지만 그것이 ‘경제적 자산 혹은 손실’로 직결된다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탄소를 줄이는 것이 곧 자산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탄소 자체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탄소의 감축 또는 저장 활동이 수치로 환산가능한 경제적 이득이 되도록 시장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탄소가격제, 배출권거래제(ETS), 계약차액제(CfD) 같은 제도들은 이러한 ‘탄소경제’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가격설정을 넘어 감축활동에 대한 실질적 보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기업이 탄소감축을 ‘환경을 위한 기부’가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인식하도록 제도 설계가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절대적이다. 감축활동의 경제적 효용을 명확히 제시하고 시장에서 탄소의 가치를 신뢰할 수 있도록 가격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은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니라 ‘필수적인 전략경영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탄소포집저장(CCS) 분야는 그 중요성과 함께 정책적 가치를 부여하기 적합한 영역이다. CCS는 단순한 배출 저감 기술을 넘어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영구 저장함으로써 실질적인 탄소제거 효과를 갖는다. 최근 뉴질랜드정부는 이 점에 주목해 CCS를 통해 영구저장된 이산화탄소에 대해 국가 감축량으로 공식 인정하고, 이에 대해 명확한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제도정비에 나섰다. 이와 같이 정부가 CCS로 감축된 탄소에 공식적인 감축가치를 부여하고, 그에 상응하는 배출권 거래상의 재무적 권리를 부여하면 CCS는 자산수단으로 재평가되며 시장성을 갖게 될 것이다.

환경보호가 경제 지속가능성의 확실한 경로

기후위기 대응을 미루는 미래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금의 탄소중립 이행 부족이 초래할 수 있는 전지구적 경제손실은 2050년까지 연간 GDP의 5%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수십조달러 규모이며 탄소감축을 미룬 결과로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세금과 피해복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탄소중립은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이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환경보호’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경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새로운 녹색산업과 일자리, 안정적인 재정과 글로벌 경쟁력 모두 탄소의 경제학 위에서 구축될 수 있다.

정부는 이제 시장에 ‘탄소의 가치’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기업은 그 신호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탄소는 이제 투자할 수 있으며 이익을 주는 실체가 있는 자산이어야 한다.

이승국 한양대 대우교수 에너지자원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