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으로 변질된 미국 유학 심사

2025-05-28 13:00:15 게재

면접 중단·SNS 심사 확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확산

미국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의무적으로 검토하는 방안이 추진되며, 학생 비자 인터뷰 일정까지 전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유학 수요 감소와 대학 재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27일(현지시간)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F·M·J 비자 신청자에 대한 SNS 심사를 확대하라는 외교 전문을 전 세계 공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루비오 장관은 “추가 지침 발표 전까지 비자 면접 인원을 추가하지 말라”며, 이미 예약된 인터뷰만 예정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테러리스트 차단”과 “반유대주의 대응”을 명분으로 한다.

F 비자는 학위 과정 유학생, M 비자는 직업교육 대상자, J 비자는 학술·문화 교류 참가자에게 발급된다. 이번 지침은 미국 고등교육기관과 직접 연결된 외국인 인재들을 대상으로 한다. 실질적으로는 SNS 활동 분석을 위한 준비 단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움직임은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이후 미국 내 반이스라엘 시위가 확산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시위에 참여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SNS 활동 이력을 심사 기준에 포함시켰다. 이후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이나 온라인 게시물까지 검토 대상이 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와 사상검증 논란이 커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팔레스타인 국기 이미지를 SNS에 게시한 학생조차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기준이 불명확한 심사 방식에 대한 외교 공관 내부의 우려를 전했다. 국무부는 이에 대해 “주권국가는 입국 희망자의 신원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며 기존 원칙을 반복했다. 타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외국인을 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교육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국제교육자협회(NAFSA)의 판타 아우 대표는 폴리티코에 “유학생은 위협이 아니라 자산이며, 이번 조치는 이들에게 부당한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납세자의 세금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육계의 가장 큰 우려는 유학생 수 감소로 인한 재정 타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데이터 플랫폼 스터디포털(Studyportals)에 따르면 2025년 미국 대학에 대한 유학생 수요는 전년 대비 최대 70%까지 감소할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1월부터 4월 사이 미국 대학 관련 검색은 50% 줄었고, 대체 유학지로 유럽·호주·뉴질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 컬럼비아 등 주요 대학들에 연방자금 지원 중단과 국제 학생 인증 프로그램 취소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유대주의 확산을 방치했다는 명분이지만, 교육 현장을 정치 도구로 삼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폴리티코는 이를 “표현의 자유와 학문적 자유에 대한 정면 공격”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약 110만 명의 국제 학생이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이다. 이는 미국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이다. 스터디포털 공동 창립자 에드윈 반 레스트는 “미국을 선택하지 않는 모든 학생은 단지 학비가 아니라 재능의 손실”이라고 경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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