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선거의 계절, 외교안보 통찰력을 묻는다

2025-05-29 13:00:01 게재

내란과 탄핵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맞이한 민주주의의 계절이다. 유난히 길고 지난했던 겨울 끝에 찾아온 이 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운명이 달린 외교안보 정책결정이 오직 대통령만의 고유한 권한이자 책임이라는 점에서 어떤 안보관을 가진 지도자를 선택하느냐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외교안보에서는 사소한 실수도 국가의 존망이나 안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외교안보 문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얽혀 있다. 냉전시기가 안보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개디스(Gaddis)라는 학자가 말한 것처럼 냉전은 어쩌면 인류에게 오랜만에 주어진 ‘긴 평화’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냉전시기의 국가들은 그저 단순하게 자기 진영의 논리에만 충실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한반도 핵무장의 문제, 동아시아 지역패권경쟁의 문제, 세계적 차원의 전략경쟁이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군사적 현안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 기술적으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냉전보다 복잡한 현재의 안보환경

우리가 안고 있는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잠재적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더하고 있다. 정치가 외교안보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지도자는 국제적 정세를 바라보는 통찰적 안목과 현안에 대한 구체적 문제 파악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를 국가와 국민의 이익의 관점에서 실용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구비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전략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다. 일본은 우리와 갈등 속에서도 가장 국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있는 이웃나라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을 지속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나 북한문제에 치명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러시아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 이들 국가들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최대 현안은 미국과의 당면한 관세 및 방위비 협상,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문제다. 트럼프정부는 출범 후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다. 몇몇 나라들이 선도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잘 풀어나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의 협상결과를 주시하면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응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핵에 대응하기 위해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대응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복잡한 안보환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핵을 가지게 된다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체 핵무장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칫 핵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 수입조차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핵을 공유한다는 것은 핵공유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다.

핵공유는 정말로 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 역시 미국의 의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 문제해결 능력 갖춘 지도자 가려내자

결국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전략적 안보환경과 우리의 당면한 현안을 모두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국가와 국민의 관점에서 실용적으로 풀어가려는 정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그 꽃이 제대로 피어나려면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

화려한 공약과 감정적 호소에 현혹되기보다는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국익 중심의 실용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가려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이러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통찰력과 국익의 관점에서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에 투표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이 선택에 달려 있다.

정한범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