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구상, 인도태평양 안보 재편

2025-05-29 13:00:01 게재

태평양 방위 조약으로 재정비

주한미군 감축 구조개편 신호

26일 마닐라에서 열린 미·필리핀 연례 합동 군사훈련 ‘카만닥(Kamandag)’ 개막식에서 한국 해병대원들(앞줄)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6월 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훈련에는 일본 육상자위대와 한국 해병대가 처음으로 공동 참여한다. AFP=연합뉴스
2025년 인도태평양 지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겨냥한 무력 통일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고, 남중국해에서는 필리핀 선박과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동해 인근 해역에서 작전 반경을 확장하고 있으며,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을 파병하며 새로운 전술을 실전 배치 중이다.

이처럼 다극화되는 안보 위협 속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재정비에 나섰다. 그 중심에 다자 집단 방위 체제인 ‘태평양 방위 조약(Pacific Defense Pact, PDA)’이 있으며, 주한미군 감축 논란 역시 이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

◆ 다자 방위 체제로의 전환, 미국의 새 안보 설계 = 엘리 래트너 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는 5월 27일자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에서 “중국의 군사적 공세에 기존 양자 동맹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이제 아시아판 집단 방위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일본·호주·필리핀을 초기 핵심국으로 설정하고, 이후 한국·인도·뉴질랜드·싱가포르 등으로 확장 가능한 다자 안보 네트워크를 구상했다.

일본은 전후 처음으로 ‘공격 능력 보유’를 천명하며 토마호크 미사일 확보에 나섰고, 호주는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며 중국과의 외교 갈등 속에서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충돌을 계기로 해군과 공군의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이들은 미국과 함께 비공식 4자 협의체인 ‘스쿼드(SQUAD)’를 구성해 공동 해양 감시, 정보 공유, 군사 훈련을 정례화하고 있다. 래트너는 “이제 비공식 협력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집단 방위 조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아시아판 나토 창설이다. 국내에서 일부 강경보수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과 함께 ‘아시아판 나토’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단순한 안보 공조를 넘어 공동 지휘 체계, 병력 교차 배치, 전략 자산의 공동 운용까지 포함한 제도화된 군사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 주한미군 감축 검토, 동맹 재설계 신호탄? = 얼마전 급부상했던 주한미군 감축설도 연장선상에 있다. 5월 22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주한미군 4500명을 괌 등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현재 주한미군 전체(약 2만8500명)의 약 16%에 해당하는 병력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를 공식 부인했지만, 전략 검토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정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지칭하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를 요구해 왔다. 이번 감축 검토도 단순한 병력 조정이 아닌, 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해석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27일 한미연구소(ICAS) 주최 온라인 세미나에서 “감축 지시는 받은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로 움직이며,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밝혀 운용 방식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브런슨은 특히 한반도를 “고정된 항공모함”에 비유하며, 중국과 러시아 양측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 거점임을 강조했다. 그는 또 전략적 유연성이란 감축이 아닌 기동성과 작전 반경 확대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일본 요코타기지에 정보 분석 셀(BIA), 필리핀 마닐라에 연합 조정 센터(CCO)를 설치해 다자 연합 작전을 실험 중이며, 주한미군도 이러한 체계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래트너는 “한국은 충분한 전략 자산과 정치적 역량을 갖춘 국가이며, 태평양 방위 조약의 핵심 참여국이 될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병력 조정은 단순 감축이 아니라 한국의 역할 확장을 예고하는 구조 개편의 일부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핵무장론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브런슨 사령관은 “그 문제는 한국의 주권 사항이며, 결정은 차기 대통령의 몫”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한국이 스스로 전략 주체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미국은 지금 인도태평양에서 안보의 ‘새 판’을 짜고 있다. 병력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 체계의 근본적 재설계다. 그 과정에서 동맹의 의미는 ‘보호’에서 ‘공동 억지’로, 군사 주둔은 ‘연합 기동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단순한 수용국으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안보 질서의 공동 설계자가 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 전략에 급속히 편입될 경우, 한반도 주변 정세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반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견제와 압박도 불가피하다. 새로운 질서가 기회인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는 지금, 한국은 명확한 전략과 주도적 외교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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