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선 초박빙…두 후보 모두 ‘승리 선언’

2025-06-02 13:00:12 게재

EU 진로 가를 ‘0.6% 접전’ 친유럽 자유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우파 세력 격돌

1일(현지시간) 폴란드 대통령 선거 2차 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바르샤바의 말라 바르샤바 극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대통령 후보인 카롤 나브로츠키(왼쪽, 폴란드 우파 법과 정의당(PiS) 지지)와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바르샤바 시장이자 집권 중도 성향 시민연합당 소속)의 득표율을 보여주는 예상치가 공개됐다. 이번 선거의 출구 조사 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음을 나타내자 중도 성향과 민족주의 성향의 두 후보 모두 승리를 주장했다. AFP=연합뉴스
폴란드 대통령 결선투표가 유례없는 초박빙 접전으로 1일(현지시간) 치러졌다. 집권 시민플랫폼(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53) 후보와 야당인 법과정의당(PiS) 지지를 받는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42) 후보는 출구조사 결과 단 0.6%포인트 차이로 엇갈렸다. 폴란드 공영방송 TVP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발표한 1차 출구조사에서 트샤스코프스키는 50.3%, 나브로츠키는 49.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두 시간 뒤 업데이트된 조사에서는 나브로츠키가 50.7%로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워낙 근소한 차이로 경쟁하고 있어 실제 당선자는 6월 2일 발표될 개표 결과를 통해야만 확인될 전망이다.

트샤스코프스키는 유럽의회 의원 출신으로 2018년부터 바르샤바 시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도날트 투스크 총리의 자유주의 개혁 노선을 계승하며, 사법 독립 회복, 낙태권 확대, 성소수자 인권 보호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이번 선거를 “서방 자유주의와 동유럽 민족주의 사이의 선택”이라며 규정했다.

반면 나브로츠키는 전직 역사학자로 보수적 가톨릭 가치와 전통적 가족 중심 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폴란드는 유럽연합법보다 자국 헌법이 우선”이라며 유럽 난민협정 탈퇴도 주장했다. 또한 불법 이민 반대와 군사력 강화를 약속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대를 홍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번 대선은 13명의 후보가 출마한 1차 투표(5월 18일)에서 트샤스코프스키가 31.4%, 나브로츠키가 29.5%를 각각 얻어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 직전까지도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간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특히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 후보들이 21% 이상을 득표하며 결선 향방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트샤스코프스키는 투표 직후 바르샤바에서 “우리가 이겼습니다”라고 외쳤고, 나브로츠키도 “폴란드를 구하겠다”며 지지자 앞에서 승리를 선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BBC에 따르면 두 후보의 캠프 모두 이날 밤 승리를 자신했으나, 오차범위 내 차이로 인해 최종 승부는 끝까지 예단할 수 없다.

폴란드 대통령직은 주로 의례적 역할이지만, 법안 거부권과 헌법재판소 추천권, 군 통수권 등의 실질 권한도 지닌다. 이에 따라 대통령 성향이 도날트 투스크 총리와 중도 자유주의 연정의 향후 정책 추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직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2015년 PiS 소속으로 당선돼 보수적 입장을 유지했으며, 2023년 총선 이후 투스크 정부의 개혁 법안을 반복적으로 거부해 왔다. 그는 2020년 대선에서 트샤스코프스키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으나, 세 번째 임기는 헌법상 금지돼 오는 8월 퇴임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폴란드의 이번 대선은 단순히 폴란드 국내 정치가 아니다.

트샤스코프스키가 승리할 경우 루마니아,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포퓰리즘 우파에 맞선 중도 진영의 연이은 승리 흐름에 포함될 수 있다. 반면 나브로츠키의 당선은 민족주의, 반EU 정서, 전통적 가치 중시 등의 흐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미국 보수단체 CPAC 행사에서 공식 지지를 받았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오벌 오피스 사진을 SNS에 공개해 우파 유권자들의 결집을 유도했다.

이처럼 폴란드 유권자들은 중도개혁과 전통보수라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앞두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 안보 이슈, 불법 이민자 대응, 사법제도 개편 등 구체적 정책에서도 두 후보의 입장은 크게 갈린다.

NYT에 따르면 트샤스코프스키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지지하며 유럽 통합의 한 축으로 폴란드를 자리매김하려 하고, 나브로츠키는 전통적 중립 노선을 고수하며 미국과의 양자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폴란드가 유럽 주류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강경한 민족주의 노선으로 선회할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특히 72.8%의 투표율은 1989년 공산주의 종식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폴란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이념적 분열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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