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거부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커다란 모순을 보여준다. 사전투표 참여는 34% 수준으로 지난 대선(36%)에 이어 선거사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일반적으로 높은 투표율은 체제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참여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다양한 정치세력이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 보여준 정치적 수준은 역사적으로 가장 낮아 보인다. 대통령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상대 세력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적하며 시민의 혐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캠페인이었다는 데 많은 국민은 동의할 것이다.
건전한 민주주의란 높은 정치 수준과 높은 투표율을 자랑한다. 미래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정치세력 간 선의의 경쟁이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상대 세력에 대한 감정적 증오와 미래에 대한 공포가 투표율을 자극하는 현실이다.
이재명 후보는 ‘내란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상대편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임을 강조했다. 실제 12.3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심각한 헌정 질서의 파괴 행위였고, 이후 반년간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호한 태도는 쿠데타를 옹호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이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모순 보여준 선거
김문수 후보 역시 ‘괴물독재’가 출현할 것이라는 경고를 외치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부각했다. 실제 지난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1인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는 사라졌고 특정인을 위한 방탄 입법의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게다가 입법부에서 확보한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와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탄핵권의 남용과 대법원 개혁안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진실이 차츰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각 진영의 주장을 순수하게 믿는다면 이번 대선은 ‘쿠데타 세력’과 ‘잠재적 독재 세력’의 대결이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권은 하나의 정당한 정치적 선택지다. 집권 가능성이 존재하는 두 후보 모두 한국 민주주의에 위협이라 판단한다면 투표를 거부하는 선택은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의무일 수도 있다.
억지로 누구라도 선택하라는 사회적 압력이야말로 독재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건강한 삶을 꿈꾸는데 왜 암과 심장병 가운데 고르라고 하는가.
민주주의의 본질은 시민이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꼭 투표하라고 강제할 일도 아니고 차선(次善)을 구분해 지지하라고 윽박지를 일도 아니다. 개개인 미시적 선택의 가능성과 자유를 넓게 보장함으로써 거시적 결과와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체 투표율이 낮아지거나 누군가 승리하더라도 국민 전체에서 지지율이 형편없다면 당선자나 집권당은 겸허한 태도를 보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물론 선택으로서 적극적 기권과 무관심의 기권을 제도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처럼 ‘지지하는 후보 없음’이라는 선택지를 투표용지에 제시한다면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서 정치세력 전체에 대한 불만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배고픈 사람에게 돌과 흙을 놓고 선택해 먹으라는 모양새였다. 돌도 흙도 싫고 밥이나 빵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이런 불만과 고민을 신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치는 퇴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덕이나 윤리의 강압적 분위기까지 동원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채찍을 흔들고, 그로써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양당 체제를 인위적으로 유지하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새롭고 참신한 정치세력
특히 이번 선거는 비전은커녕 가치와 정책도 사라지고 두 집단 간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선택을 강요하지 말고 둘 다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필요했다. 물론 더 좋은 해결책은 새롭고 참신한 정치세력의 탄생이겠지만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