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한중관계 재정립은 실용주의 관점으로

2025-06-05 13:00:02 게재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로 새롭게 출범하는 국민주권정부에게는 계엄과 내란 종식, 국민경제와 헌정질서 회복의 역사적인 사명이 주어져 있다.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복원을 통해 실추된 국가이미지를 바로 세워야 한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외교관계를 재정립하고 국민을 위한 국가이익을 실현해야 한다.

긴급하게는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 파고에 대응해 한미 간의 관세 및 무역관계 조정과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대중정책은 지난 3년간 ‘이념’의 함정에 빠져서 ‘실용’을 상실했던 한중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정치 구조가 변동했던 탈냉전 시기에 한국과 중국은 1992년 국교를 수립하면서 우호협력관계를 맺었다. 이어서 1998년 협력동반자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단계적인 협력 발전을 이루었다. 양국은 실용주의 관점에서 체제와 이념 차이를 넘어 상호의존의 이익을 확대했다. 이 시기는 클린턴정부에서 부시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대중국 포용정책을 추진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2010년대 미국의 대중정책 변화는 한국의 대중정책에 영향을 주게 된다.

미중갈등 속 한중관계 퇴행의 그림자

미국의 대중국 포용정책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는 미국의 싱크탱크 중 하나인 애틀랜틱 카운슬에 발표된 ‘더 긴 전문: 새로운 미국의 중국 전략을 위해(The Longer Telegram: Toward A New American China Strategy)’이다. 이는 2차세계대전 직후 냉전시대를 열었던 대소련 봉쇄전략을 구상한 조지 케넌(George Kennan)의 ‘긴 전문(Long Telegram)’의 재연이다.

오바마정부의 리밸런싱 정책, 트럼프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중국 포위전략이 구상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협력을 요청받기 시작했다.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불러일으켰고 한중교류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전임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한일관계 개선 등 ‘가치외교’를 중시하면서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안미경미(安美經美, 안보도 경제도 미국)로 전환했다.

이러한 결과로 한중 경제관계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념이 실용을 압도한 것이다. 한중 교역규모는 2022년 약 3104억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나 2023년은 2677억달러로 급감하고 2024년도 전년대비 소폭 증가한 2729억달러에 그쳤다.

대중 무역수지에서도 2013년 최고치를 기록했던 628억달러 흑자가 윤석열정부에 이르러서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대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26.8%로 정점에 이르렀으나 꾸준히 하락해 2024년에는 19.5%를 기록했다.

대중 직접투자의 하락은 더욱 뚜렷한 감소를 보였다. 2022년 약 85억4000만달러가 2023년과 2024년 각각 18억7000만달러와 11억4400만달러로 급감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에 따라 반도체 등 민감한 첨단분야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의 투자를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한중교류의 감소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수와 양국 간 학생들의 유학 규모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중 양국 간 국민들의 상호 부정적 인식도 강화되었다.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는 특히 한국 내 청년세대의 혐중인식이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비중도 감소하고, 중국 관련 학과의 인기도 퇴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4년 양국이 한시적 관광객 무비자 대책에 합의하면서 중국인 관광이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 한중관계 개선 위한 채널 개설해야

새로 출범하는 국민주권정부의 대중정책은 실용주의로 회귀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나 양자컴퓨팅 등 첨단산업 분야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재생 에너지나 수소경제 관련 분야에서 중국의 우수한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국가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국가전략도 구상해야 한다. 새정부는 출범 즉시 중국으로 특사를 보내어 실질적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채널을 개설해야 한다. 2025년 10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만남을 계기로 한중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차창훈 부산대학교 교수 중국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