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째 이어진 LA 시위에 해병대까지 투입키로
강경 대응에 시위 격화
트럼프의 ‘의도된 수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나흘째 이어지는 반이민 단속 시위에 미 해병대까지 투입될 예정이다. 북부사령부는 9일(현지시간) 해병 제1사단 산하 제7연대 제2대대 소속 병력 약 700명이 LA에 파견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태스크포스 51’이라는 연방 작전단과 통합돼 ‘타이틀 10(Title 10)’ 연방 법률에 따라 연방 인력 및 시설 보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타이틀 10은 주지사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연방 병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이미 캘리포니아주에 주방위군 2000명 투입을 지시했다. 또 해병대 추가 파견에 대해서는 “상황을 보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조치가 “법 집행기관과 이민 단속 반대 시위대 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고 보도하며 해병대 투입이 단순한 치안 대응을 넘는 정치적 성격을 지녔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병력 투입 결정은 단순한 공공질서 유지를 넘어선 정치적 승부수를 띤 전략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장악한 캘리포니아는 트럼프에게 정치적 ‘적지’이며, 현 주지사인 개빈 뉴섬은 차기 대선 주자로도 꼽힌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가 주정부 동의 없이 주방위군을 동원한 것은 “연방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예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뉴섬은 무능하며, 체포를 지지한다”고 맞받았다.
정치 분석가 톰 니콜스는 애틀랜틱(The Atlantic)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헌법과 민군 관계 전통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주 방위군을 ‘연방화’해 시민 간 갈등을 유도하고, 이 사태를 자신의 선거 전략에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현지 경찰도 시위가 점차 격화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짐 맥도널 LA 경찰국장은 “내가 목격한 폭력은 역겨운 수준”이라며 “폭죽이 경찰을 향해 발사됐고, 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 시위대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지만, 동시에 대다수는 평화적 시위 참여자라고 밝혔다. 실제로 ICE 단속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 대부분은 이민자 권리를 요구하는 비폭력 집회를 벌였다.
이번 LA 시위는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무차별 단속에서 비롯됐다. 지난 6일 ICE 요원들이 다운타운 의류시장과 홈디포 매장 등에서 불법 이민자 44명을 체포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이들이 수감된 연방 구금센터 주변과 히스패닉계 밀집 지역인 패러마운트 등을 중심으로 연일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번 시위는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등 타 도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 투입에 대해 단속을 위한 정당한 조치로 포장하고 있다. 그는 “방위군 투입이 없었다면 LA는 파괴됐을 것”이라며 SNS를 통해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NYT는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층 결집과 반민주당 여론 조성을 위해 캘리포니아를 정치적 전장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불법이민이라는 정책 논쟁을 넘어서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 헌법 해석, 연방과 주의 권한 갈등, 그리고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충돌이 한데 뒤섞인 복합국면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LA 시위는 미국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는 전장이 됐고, 트럼프의 해병대 투입 선언 역시 의도된 수순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