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과 에너지를 함께 보다 ①
‘에너지안보 탄소중립 성장’ 3가지 실타래를 풀어라
미국 관세폭탄·에너지비상사태 배경은 무역수지 개선 기대
세계 각국 셈법찾기 분주 … 산업과 에너지는 동전 앞뒷면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기후변화, 전쟁, 무역질서 파괴, 공급망 붕괴 등 불가항력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트럼프 2.0시대)한 2025년 1월 20일 이후 세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슬로건으로 세계 70여개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명명했다. 관세폭탄 배경은 달러화 가치 하락과 무역수지 개선, 제조업 부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와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잇따라 선언했다. 세계 에너지질서 마저 흔든 배경도 관세폭탄 취지와 비슷하다. 산업(무역)과 에너지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앞뒤면 같은 관계다. 세계 각국은 미국 눈치 보기와 그에 따른 셈법 찾기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0년대는 소수 국가들이 지역 허브 역할 = 인포그래픽 전문 미디어 ‘비주얼 캐피탈리스트’(Visual Capitalist)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하더라도 글로벌 무역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소수의 국가들이 각 지역의 허브 역할을 담당해왔다.
유럽에선 영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동·서독의 통일을 이룬 독일이 그 공백을 메워나갔다. 이 무렵 독일은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유럽의 무역 중심지로 위상을 굳혔다.
1990년대는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부상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말 중국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진두지휘했으며, 외국인투자를 장려하고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했다. 흑묘백묘론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융합을 시도한 것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세계 무역파트너로서 존재감을 키웠다. 그 결과 2010년 중국 교역액은 10년 전인 2001년의 5.8배인 2조9728억달러에 달했다.
◆미중 고래싸움 속 한국 ‘생존전략’ 필요 = 2020년 시점에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기존 지역 허브 국가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고, 글로벌 무역구조가 급격히 재편된 것이다.
이제 다수 국가들은 미국보다 중국과의 교역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향후 외교 영향력, 인프라 투자, 무역협정 체결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미중 패권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글로벌 무역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재편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과 중국간의 긴장관계도 심화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전 임기 때인 2018년 중국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했고, 무역제한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구도는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취임하면서 더 노골화됐고,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체계는 붕괴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대립의 평행선 다툼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고위급 무역회담을 갖고 양국간 ‘무역 전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수출통제 문제를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협상 상황에 대해 질문받은 후 “우리는 중국과 잘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쉽지 않다”고 답변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처럼 무역의존도 높은 국가들은 글로벌 무역지형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미중 경쟁 틈새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교역 구조의 다변화와 안정적인 에너지확보 및 공급망 구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관세부과·에너지수출로 무역적자 개선 모색 =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총 교역규모는 47조6979억달러(수출 23조6450억달러, 수입 24조529억달러)에 이른다. 2022년 49조8286억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많은 액수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이 6조1673억달러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7%다. 미국은 5조3328억달러로 15.3%를 차지했다. 중국과 미국 두 나라의 교역비중이 세계 총 물량 중 3분의 1에 이른다. 다만 교역에서 중국은 수출이 3조5802억달러로, 수입 2조5870억달러보다 9932억달러 많은 반면 미국은 수출 2조654억달러로, 수입 3조2674억달러보다 1조2020억달러 적다. 중국은 9932억달러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미국은 1조2020억달러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이 외에 주요국 무역규모는 독일 2조7251억달러(7.8%), 일본 1조4505억달러(4.2%), 한국 1조3154억달러(3.8%)로 나타났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 중 하나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규모다. 원화로 환산하면 1643조4946억원(6월 11일 환율기준)에 이른다.
막대한 무역적자는 트럼프가 주요국에 상호관세와 철강·자동차에 대한 관세폭탄을 부과한 이유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관세폭탄의 배경은 달러화 가치 하락과 무역수지 개선, 제조업 부흥으로 요약된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배경도 유사하다. 트럼프의 에너지정책 목표는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물가안정과 제조업 부활, 에너지 수출 확대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 등이다.
그는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제조업 국가도 갖지 못한,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많은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며 “석유·천연가스 시추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다시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에너지)가격을 낮추고, 전략 비축유를 다시 채우며, 미국산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할 계획”이라며 “우리는 다시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즉 에너지 가격 인하를 통해 제조업 부활을 꾀하고, 석유·천연가스 수출을 확대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구상이 트럼프의 확고한 입장이다.
◆글로벌 통상·교역의 뿌리는 에너지 = 글로벌 통상·교역은 어느 한 두가지 문제로 규정지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에너지문제가 뿌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스페인연합군간 벌어진 해전은 돛(범선)이 폐기되고 증기기관(석탄증기선)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20세기초 발생한 1차 세계대전은 석유의 영향력을 키웠다. 석탄과 철도로 무장했던 독일은 석유를 앞세운 영국에게 무릎을 꿇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원자력이 무기로 사용됐으며, 종전 후 평화적 이용과 상업적 발전소 운영이 논의됐다. 이처럼 세계는 특정 시점마다 에너지가 흥망성쇠를 좌우했고, 에너지전환이 이루어졌다.
에너지·자원을 가진 국가는 세계를 지배하거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영토 편입 시도 △러-우 전쟁 개입과 우크라이나 회유 역시 중국 견제 및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보호무역의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트럼프 2.0 시대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 성장이라는 3가지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어느 하나만 선택해 일방적으로 추진하거나, 어떤 것은 포기할 수 없다. 영리하게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3.6%(2024년말 기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에너지안보는 절대적으로 지켜야할 가치다. 또 탄소중립을 위한 저탄소화 사회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며, 산업발전 등을 통한 성장도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