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과 에너지를 함께 보다 ②

독일, 기후목표 유지하되 경제성장·산업경쟁력 강화 주력

2025-06-12 13:00:09 게재

기후대응 모범 독일도 내부에선 에너지전환 이견 치열

2045년 탄소중립 목표시점 5년 늦추자는 주장도 나와

2025년 1월 시작된 트럼프2.0시대는 세계 에너지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청정에너지사회로 묵묵히 나아가던 세계는 미국이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석유·천연가스는 물론 석탄까지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4일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실효적인 탄소중립 정책 추진으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선거에서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산업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탄소중립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설명했다.

트럼프2.0시대에 국민주권정부에 주어진 과제는 △탄소중립 △에너지안보 △성장 등 3가지로 요약된다. 풀어야할 과제는 국내·외에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선진 제조국가인 독일과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마련하는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57% 달해 = 독일은 전 세계에서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을 가장 잘 실행해 온 모범국가로 꼽힌다. 12일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총 전력생산량은 2019년 6081억kWh에서 2022년 5779억kWh, 2024년 4973억kWh로 감소했다. 에너지 효율개선과 수요 감축 노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에너지원별 발전비중은 재생에너지가 2019년 39.7%에서 2024년 57.1%로 급증했다. 세부적으로는 풍력이 20.7%에서 27.9%로, 태양광이 7.4%에서 14.9%로 각각 늘었다.

반면 갈탄은 같은 기간 18.7%에서 15.9%로 감소했다. 무연탄도 9.5%에서 5.5%로 줄었다. 원자력은 12.3%에서 0.0%로 탈원전을 실현했다. 천연가스는 14.8%에서 15.8%로 소폭 늘었다. 재생에너지 급증과 갈탄 발전량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8억900만톤CO₂에서 2023년 6억8200만톤CO₂으로 줄었다.

독일은 2045년 탄소중립 목표와 2038년 석탄발전 전면 중단 계획을 법제화했다. 이 목표는 연방기후보호법을 통해 명문화됐다.

◆재계-NGO, 정당별로 입장차이 뚜렷 = 그러나 최근 독일에 이상기류가 생겼다. 올 2월까지 유엔기후변화협의회(UNFCCC)에 제출해야했던 2035년 기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6월 12일 기준으로 대상국가 195개국중 제출한 국가는 22개국에 불과하지만 독일이 그렇다는 게 심상치 않다는 시선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취임이후 논란은 심화되는 분위기다. 메르츠총리는 기후목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제성장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그는 “기후 정책이 경제정책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며 현실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미디어 ‘클린 에너지 와이어’(Clean Energy Wire)에 따르면 메르츠의 에너지전환에 대한 입장은 재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바이에른 산업협회 회장인 베르트람 브로사르트는 “총리가 명확하게 우선순위를 설정함으로써 독일경제에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며 “특별세제 감면, 에너지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기후활동가 단체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야심찬 탄소배출 감축 정책과 그 성공적인 시행에서 초점을 잃으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또 국제 미디어 플랫폼 ‘리세서리’(Reccessary)는 “기후변화는 독일에서 점점 정치 쟁점화 되고 있다”며 “기독교민주연합(CDU),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모두 2045년 탄소중립 달성과 2030년까지 65% 감축 등 중간목표를 지지하지만 정당마다 접근방식이 다르다”고 보도했다.

이어 “하지만 자유민주당(FDP)은 2045년 목표를 2050년으로 연기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며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인위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2038년 석탄발전 폐지에 대해서는 CDU와 FDP가 지지하고, 녹색당은 폐지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겨야 한다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AFD는 신규 원전을 건설할 수 있을 때까지 석탄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독일의 자동차산업협회인 VDA는 “EU의 2035년 신규 내연기관차 금지 조치를 철회하라”고 10일 요구하고 나섰다. 메르츠의 보수파가 속한 유럽의회 산하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도 금지 해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2035년 이후 신규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는 EU법으로, 독일이 단독으로 철회할 수는 없다. 특히 교통부문의 탈탄소화는 저탄소 전력생산과 함께 독일의 탄소중립 정책의 핵심 축이다.

◆경제위기 지속되자 에너지정책 완급조절 고민 = 메르츠 총리가 기후목표를 유지하겠다고 하면서도 경제성장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우선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메르츠가 속한 CDU와 SPD, 기독교사회연합(CSU)으로 구성된 연립정부의 정책도 기후보호 문제에서 경제 및 성장으로 전환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독일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5개월 연속 50미만을 못 벗어나고 있다. 50미만은 경기위축을 의미한다. 독일 상공회의소 DIHK가 지난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에너지다소비업종 기업의 45%가 생산감축이나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에너지 및 환경규제 비용이 높아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불만 때문이다.

실제로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가 조사·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일본보다 산업용 전기요금과 천연가스 가격이 각각 3%, 39% 비싸다. 이산화탄소 배출권 가격과 환경규제비용은 각각 84%, 59% 더 많다.(본지 2025년 6월 11일자 기사 참조)

이처럼 독일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경제회복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에너지정책의 완급조절을 고민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도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 적정성 논란 =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2023년말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38개국 중 26위로 MWh당 122.1달러다. OECD 국가의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2023년 시장환율 기준 적용)은 160.1달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2021년말부터 2024년말까지 76% 인상했지만 여전히 타 국가와 비교하면 저렴한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국가는 캐나다(108.0달러), 스위스(95.0달러), 노르웨이(82.5달러) 등이며, 미국이 80.5달러로 가장 저렴하다.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국가들은 대부분 에너지 자립률이 높거나 전력생산을 자체적으로 충당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수입의존도가 93.6%에 달하는 데다 제조업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단순히 현재 요금만으로 “비싸다, 저렴하다” 단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한전은 2022년 전후로 국제에너지가격이 급등했을 때 물가안정·서민경제 애로 등을 이유로 국내요금에 반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24년말 현재 총부채 205조원, 누적적자 35조원, 이로 인한 이자비용으로 연간 4조6651억원을 부담했다.

그럼에도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기업활동 부담과 산업경쟁력 저하 우려를 잇따라 표명하고 있다.

유승훈 교수는 “독일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에너지요금체계를 손 볼 필요는 있다”면서 “다만 일방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연료비연동제와 전압별요금제를 산업용(을) 요금에만 적용한다든지, 정부재정 투입을 전제로 산업용(을) 전기요금 인하를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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