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강국 닮은꼴 독일·일본, 산업·에너지정책은 다른 길
독일, 과감한 전환 vs 일본, 현실적 완충
우리나라가 ‘에너지안보·탄소중립·성장’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려면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일본은 선진 제조강국이다. 하지만 산업과 에너지 정책을 보면 걸어온 길이 사뭇 다르다.
독일은 탄소중립 사회를 위해 과감한 에너지전환을 선택했고, 산업발전방안도 그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에 비해 일본은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제조업지수 ‘35개월 연속 경기위축’ =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독일의 국내총생산(GDP)는 4조7448억달러로 세계 3위, 일본은 4조1864억달러로 세계 5위다. 1인당 GDP는 독일 4만2878달러(19위), 일본 3만7079달러(2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수출총액은 독일 1조5303억달러로 3위, 일본 7075억달러로 5위다.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독일의 우세 속에 일본이 바짝 추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독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경제상황이 그리 밝은 모습만은 아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독일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월 48.3을 기록했다. 50 미만은 경기 위축을 나타내는데, 35개월 연속 50 미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또 “높은 에너지 가격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인해 독일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저해되고 있다”며 “기업이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제조업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러시아로부터 값싼 에너지 수입이 급감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독일 상공회의소 DIHK가 3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2024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기업의 37%가 생산 감축이나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023년 31%, 2022년 16%보다 증가한 수치다.
이중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의 기업 약 45%가 생산 감축이나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산업 기업(industrial companies)의 3분의 1 이상이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핵심 공정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으며, 3분의 2는 경쟁력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답변했다.
가격 압력과 생산량 감소로 인해 조사대상 기업 4분의 1은 기후대응 투자를 축소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는 조사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DIHK가 밝혔다.
이에 독일 경제부는 2024년 산업용 전기 가격에 대한 보조금을 제안했다. 하지만 재무부가 이의를 제기한 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연합정부가 2024년 예산을 대규모 삭감하면서 보조금 제안이 폐기됐다.
경제학자들과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비영리기관 CEPR은 “독일 제조업은 2021년말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 세계 수요 부진, 자동차 산업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2024년 말 생산량이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감소하는 등 독일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CEPR은 특히 자동차산업의 애로를 우려했다. “중국은 저렴한 전기자동차(EV)를 유럽으로 대량 수출하기 때문에 유럽 자동차제조업체의 치열한 경쟁자”라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이 독일 EV 수출의 가장 중요한 시장(수출의 85%, 약 200억 달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전기차의 부상은 독일 자동차제조업체에겐 치명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폭스바겐그룹의 2024년 글로벌 차량 판매량은 900만대로 전년 940만대 대비 3.5%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91억유로로, 전년 225억유로 보다 15% 줄었다. 포드는 3월 독일 자회사에 44억유로를 투입해 재정난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체 뿐만 아니다. 독일의 산업용 섬유 제조업체인 하임바흐그룹은 미국의 앨버니 인터내셔널에 인수(2023년 8월)됐다. 스위스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인 메이어버거는 2025년 5월, 독일 자회사에 대해 파산 신청을 했고, 독일의 원자력 엔지니어링 회사인 NUKEM 테크놀로지스는 2024년 10월 일본기업(머루시스텀즈 코퍼레이션)에 인수됐다.
◆일본, 미국 관세폭탄 상황에서 4월 대미 흑자 늘어 = 이에 비해 일본 제조업은 특정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하며, 독보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고도의 기술력, 지속적인 연구개발, 특화된 제품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향상 등 혁신, 소니의 통합 비즈니스 모델, 니콘과 캐논의 기술력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관세폭탄 서슬이 시퍼런 최근 미국과의 교역도 주목된다. 한국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전년 4월 63억달러에서 올 4월 36억달러로 40% 감소한 반면 일본은 62억달러에서 67억달러로 8.1% 늘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은 지난해 6월부터 지속된 대미 전기차 수출 감소에 따라 자동차 수출이 줄었고, 전체적인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며 “반면 일본은 압도적인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와 내연차를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에너지·환경비용이 산업발전 저해(?) = 이와 함께 양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보려면 산업정책 및 에너지구조를 함께 봐야한다는 의견의 제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통해 2024년 4월 가동중이던 모든 원자력발전을 전면 중단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을 멈췄으나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재가동하고 있다.
또 독일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화학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에 관한 제도(REACH) 등 고강도 환경규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탄소중립 정책도 법적의무화를 마쳤다. 산업보호정책은 환경규제 우선이다.
하지만 일본은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준에 근거하되 자율성을 보장하는 환경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산업보호정책도 기업 생존 및 산업경쟁력 우선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조사·분석한 독일과 일본의 에너지요금구조는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산업용 전기요금(MWh 기준)의 경우 독일은 2010년 68유로에서 2020년 78유로 2024년 160유로로 135% 올랐다. 이에 비해 일본은 같은 기간(유로로 환산) 85달러, 109달러, 155달러로 82% 상승했다. 국제에너지가격 급등으로 요금인상이 불가피했지만 일본은 정부가 요금을 통제하면서 산업경쟁력을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천연가스 가격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권, 환경규제 비용도 마찬가지다.
유승훈 교수는 “독일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은 고비용 구조와 정책 불일치로 실패했고, 일본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은 고비용 견제와 정책 밸런스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본과 비교해 높은 독일의 에너지비용 및 기후비용이 독일 주력산업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