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알박기’의 득실 계산
서울 강남역 인근 서초 삼성타운 앞에 꼬마 빌딩이 있다. 32~44층의 마천루 단지에 낀 6층짜리 작은 건물은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삼성측이 부지를 매입할 당시 건물주가 시세보다 높은 600억~700억원선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한다. 그 바람에 삼성타운 부지도 찌그러진 모양새가 됐다. 시민들은 부동산 알박기의 전형 아니냐며 혀를 찼다.
사실 건물주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1990년대 삼성이 부지를 조성하기 훨씬 전인 1971년 매입했다는 거다. 이 부지는 주인이 세상을 떠난 후 2009년 자녀들이 성형외과 의사에게 230억원선에 팔았다고 한다. 애초 삼성에 팔았을 경우와 비교하면 득실은 어떨까.
반면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미니 빌딩은 전형적인 알박기 유산이다. 1996년 건축된 한라아파트 담벼락에 붙은 5평짜리 부지인데 건설회사가 매입을 포기하고 단지를 조성했다. 5평을 1000만원에 매입한 알박기 투자자는 25년이 지나 4500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새 주인은 여기에 바닥면적 2.2평의 3층짜리 상가주택을 지었다. 5평 알박기는 금리와 세월을 감안하면 어떨까. 그저 본전치기 아닐까.
일제시대 좌측통행은 사회문화적 알박기
부동산에만 알박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의식 속에도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우측보행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조선시대 종묘제례도, 능행도의 행렬도에도, 단원 김홍도 그림도 우측보행이다. 대한제국도 1905년 우측통행을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1년 조선총독부가 일본과 똑같이 차량도 사람도 좌측통행으로 바꿨다. 이를 미군정이 1946년 차량 우측통행으로 규칙을 명시한다. 이때부터 통행방식에 혼란이 생겼다. 세계적으로 사람과 차량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한 방향인데 우리는 뒤섞인 거다.
결과적으로 사회문화적 알박기가 된 좌측보행은 90년이 지나 사람도 차량도 우측통행으로 정리된다. 시작은 2007년 김영순 당시 송파구청장의 결단이다. 그는 좌측보행이 우측보행보다 교통사고율이 1.6배 높으며 이로 인해 보행자 교통사고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일개 구청이 벌인 작은 보행문화 개선운동은 중앙정부를 움직여 2010년 7월 1일 정식으로 우측보행이 실시된다.
그렇지만 철도의 좌측통행은 그대로다. 일제의 유산인 철도의 좌측운행과 달리 도시철도는 우측통행으로 결정됐다. 그 결과 지하철 4호선 남태령 구간에 ‘꽈배기 노선’이 생겼다. 터널 속에서 철도 노선을 비틀어 진행방향을 바꾼 것이다.
지하철 3호선도 원래 지축역 구간에서 꽈배기처럼 진행방향을 바꾸도록 설계됐으나 효율성 논란에 대화역까지 우측통행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럼에도 이후 건설된 공항철도와 GTX는 좌측통행이다. 그 때문에 우측통행인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의 직접 연결이 어렵다. 꽈배기 구간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철도청은 우측통행으로 변경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KTX나 SRT 등 고속철도는 좌우 교차운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존 철도도 전자안내판 등 초현대식으로 시설물을 개선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실제적 비용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도시철도와 광역철도가 모두 연계돼야 하지 않나.
요즘은 정권의 인사 알박기가 해결 과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공시된 내용을 분석한 결과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임명된 기관장이 56명이다. 이 가운데 53명은 탄핵이 가결된 이후 임명됐다는 거다. 그야말로 탄핵 대행정권의 알박기 전횡이다.
그나마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4월 8일 알박기로 헌법재판관에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부장판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지명을 철회했다. 인천공항공사에 내정된 임원 4명 중 3명도 임용이 무산됐다. 그럼에도 이미 쇠못처럼 박아놓은 인사는 어찌할까.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대통령이 파면된 경우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과 군인사법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무직 임기제 득실 따져 기준 마련하길
사실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는 명분도 염치도 없다. 더욱이 지향점과 가치관이 다른 정권과 동거하는 기관장도 어색하고 불편하겠다. 무엇보다 조직 장악력이 떨어져 업무효율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권마다 돌고도는 알박기를 법률로 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대통령의 임기가 6개월 이내 남았다면 공석인 공공기관장은 대행체제가 적절하겠다. 특히 정무적인 자리는 비록 임기제라도 정권과 함께 정리하는 것이 예의겠다.
여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니 바람직한 국가운영 차원에서 득실을 따져 기준을 마련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