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때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출범한 이재명정부
이재명정부가 출범했다. 한편에서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절박성도 이전 정부와는 남달라 보인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지속해온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 장기성장 국면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져 있다. 하지만 현실 조건은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정부 때보다도 냉혹하다. 세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상황은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국난이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주저앉으면서 기업 줄도산이 일어나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며 노숙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기업을 중심으로 한 국민경제의 기초체력은 탄탄하게 살아있었다.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실을 털어버리고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며 세계시장을 질주했다. 몇 년 뒤인 노무현정부 시기에 이르러서는 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부문에서 필생의 꿈이었던 일본 추월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신산업 육성 정책도 빛을 발휘했다. 김대중정부는 경제회생의 지름길은 신산업 육성에 있다고 보고 IT산업과 문화콘텐츠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정부 지원 아래 IT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으로 태동하고 초고속 인터넷이 빠르게 건설되면서 한국은 일거에 세계 굴지의 IT 강국으로 부상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부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K-컬처 산업은 세계적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IT는 기반 기술로, K-컬처는 홍보 인프라로 작용하면서 한국경제 신성장동력으로 기능했다.
사회정치적 환경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작동했다. 김대중정부는 DJP연합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국무총리도 김종필에 이어 박태준이 맡았다. 말 그대로 진영을 초월한 연합정부였다. 국민 또한 금모으기운동에서 드러났듯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난극복 의지를 보였다. 덕분에 빠르게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DJ 때와 달리 국민경제 기초체력 바닥난 상태
이재명정부를 둘러싼 조건은 어떠한가? 먼저 김대중정부 때와 달리 국민경제의 기초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 생산성 관련 각종 지표는 정체와 퇴보를 거듭했다. 이는 곧바로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김대중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은 주요 산업부문에서 일본을 추출했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주요 산업부문 대부분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 급기야 경제성장의 엔진인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제로에 이르고 말았다.
신산업 육성 정책이 먹히기도 쉽지 않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형 국가다. 국가경제 운명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판도에 좌우된다. 신산업 육성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과거 미국과 일본 등이 신산업의 선두주자로 나섰을 때 한국은 빠른 추격자 위치에서 기술 격차를 줄이면서 낮은 생산비를 무기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현재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전기차 등 신산업에서 선두주자로 나선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의 30배가 넘는 정부 R&D 예산, 미국을 능가하는 과학기술 인재풀, 14억 인구의 내수시장 등을 배경으로 신산업 선두주자 위치를 굳혀 가고 있다. 문제는 생산비용마저 중국이 한국보다도 낮다는 데 있다. 한국이 통상적 수준에서 신산업 육성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정치적 상황도 크게 다르다. 한국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앞에서는 미국이 관세 전쟁 등으로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중국이 사정없이 밀어 제치고 있는 형국이다.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총력전을 전개해도 부족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네편이냐 내편이냐가 모든 판단과 선택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진영논리가 국민을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낡은 틀 벗어나 혁명적 전환 가능성 커져
이런 조건에서 새 정부가 저성장에서 성장으로 한국경제의 국면전환을 주도하자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희망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울려 퍼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함께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갈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혁명적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이재명 새 정부가 감당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