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기대한다

2025-06-13 13:00:03 게재

이재명정부의 중소기업 관련 많은 공약 중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다. 조금은 생소한 디스커버리 제도는 영미법의 증거 공개 제도로서 재판전에 소송 당사자들이 소송 상대에게 필요한 증거를 요청하며, 이때 소송 상대는 적절한 절차에 의거해 증거를 재판 전에 제출하는 제도다.

물론 소송 상대가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며 소송 당사자들 사이에 자료 제출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경우 법원의 조정절차를 거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선행된다. 이 제도는 문재인정부 때부터 제도화를 시도했으나 행정부처 국회 이익단체들의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쟁점 조정이 원활하지 않아서 제도화에 이르지 못했다.

동일 사건에 한국과 미국 서로 다른 결과

그러는 사이 필자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이 디스커버리 제도 유무에 따른 소송전의 승패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벤처혁신실장으로 근무할 2020년경 한국의 M사와 D사는 보톡스 종균의 기술침해를 주장하며 법정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사건의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M사는 종균을 발견해 보톡스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핵심 개발인력이 D 사로 이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D사에서도 보톡스 제품이 출시되었다. M사는 D사가 자사의 종균을 불법적으로 취득해 제품화를 했다고 주장하며 소송과 기술침해 조정 절차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실무진과 긴밀히 협의한 바 양사가 보톡스 종균 샘플을 제공하고 중기부가 제 3의 기관을 통해 제출된 종균의 DNA 염기 서열만 분석해 보면 동일 종균인지 여부를 쉽게 판가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D사는 샘플 제출을 자사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소송은 증거 불충분, 그리고 행정조정 절차는 D사에게 행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과태료 수백만원 처분으로 종결됐다. 쉽게 이야기해서 심증은 있으나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종결된 사건이 엉뚱하게 미국에서 결론이 나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이 두 회사의 제품은 모두 미국에 수출이 되고 있어서 M사는 동일한 소송을 미국무역위원회(ITC, Internation Trade Commission)에 제기했다. ITC는 한국의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보호과의 실무자들과 같은 결정에 도달했다. 결론은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D사가 패소했고 두 회사는 보상에 대한 구체적 협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사건 후에 D사는 별도의 종균을 개발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이 문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운영돼 증거를 숨기는 행위에 대해서 소송 패소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도의 기반이 마련돼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행정 명령 불이행에 따른 수백만원의 과태료 처분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어서 공직생활 중 큰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업간 건전 경쟁 통한 시장의 신뢰기반 되길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대부분 소송의 남발, 기업 영업비밀 유출 위험, 소송 준비 기간과 비용 증가 같은 부작용을 주장한다.하지만 D사와 M사의 경우처럼 이렇게 증거자료만 명징하다면 오히려 소송에 따른 비용 증가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M사는 미국에서 비슷한 소송을 다른 경쟁사 제품에도 진행했으나 패소하는 경우도 생겨서 오히려 수백억원대의 소송비용을 감당해야 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주가조작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현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자본시장 신뢰회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가 기업간 건전 경쟁을 통한 실물경제 시장의 신뢰 구축의 기본 바탕임을 공감하고 이번 정부에서는 꼭 실효성 있는 제도의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

차정훈 전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