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뇌 영양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얼마 전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검사를 마친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쪽지를 내밀며 묻는다. “이 약을 먹으면 도움이 좀 될까?” 쪽지에는 지인이 추천해 줬다는 약 이름이 적혀 있다. 이른바 ‘뇌영양제’ 혹은 ‘치매예방약’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요즘 친구나 이웃에게서 “먹어보니 머리가 맑아지더라”라는 말을 듣고 이 약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 정체는 바로 콜린알포세레이트라는 약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본래 치매치료를 위해 개발된 약이다. 이 약은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콜린을 공급한다. 아세틸콜린은 기억력과 인지기능에 핵심적인데, 치매환자에서는 이 물질의 수치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콜린을 보충해 아세틸콜린의 생성을 도우며, 이를 통해 인지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있다.
이런 작용 원리 때문에 임상에서는 이 약을 도네페질 같은 아세틸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와 함께 쓴다. 병용 투여 시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더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이 약이 건강보조제처럼 단독으로 처방되거나 사용되는 일이 많다. 어르신들이 병원에서 “뇌에 좋은 약 좀 달라”며 이 약을 처방받는 일도 드물지 않다.
치매치료 효과는 입증, 예방효과는 불확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이 약의 처방은 최근 몇년 사이 크게 늘었다. 2018년에 약 5억3000만개였던 연간 처방량이 2023년에는 11억6000만개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지난해 건강보험 청구액은 총 5734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치매치료에 쓰인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예방이라는 이름 아래 건강보험 재정으로 수천억원씩 쓰이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약의 치매예방 효과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아세틸콜린에스테라아제와 함께 쓰였을 때 치매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임상연구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치매가 없는 사람이 이 약의 단독 복용으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대한신경과학회 역시 이 약의 승인된 세 가지 효능 중 치매치료를 제외한 두 가지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허가를 취소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공식 제시했다.
논란이 커지자 보건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이 약의 치매치료 외 용도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줄이고, 본인부담금을 30%에서 80%로 높이는 방안을 2020년에 마련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집단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이 조치는 아직까지 시행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이 약은 예전과 같은 조건으로 처방되고 있다. 정부는 추가로 임상 재평가를 진행 중이고 병원에서의 처방 실태도 살피고 있지만,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이 약의 안전성에 관해서도 걱정스러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1년 서울대병원 박상민·이경실 연구팀은 50세 이상 성인 1200만명을 10년간 관찰한 끝에 이 약을 복용한 사람은 복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43%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뇌경색은 34%, 뇌출혈은 37%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억력을 지키기 위해 먹은 약이 오히려 뇌에 더 큰 위험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콜린 성분을 과잉섭취하면 대사과정에서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트라이메틸아민-N-산화물(TMAO) 수치가 늘어나고 이것이 뇌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을 제외했고 나이와 질병 같은 변수도 통제했음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이 연구에서 연구팀은 이 약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상의 노력이 뇌 건강 지키는 확실한 길
안타깝게도 아직 치매를 확실히 예방하는 약은 없다. 결국 뇌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습관을 지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균형 있는 식단을 유지하고, 숙면을 하고, 머리를 자주 쓰고, 사람들과 꾸준히 대화하는 것이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로 밝혀졌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잘 관리하는 것이 뇌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약 한 알에 모든 것을 기대기보다 일상의 노력이야말로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