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AI 패권시대의 기술주권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우리 경제가 정체의 늪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은 0%대, 잠재성장률은 1%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권 기반 산업정책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지난 1960년대 이후 냉전기는 일본 산업정책의 시대였다. 일본은 기술과 품질을 무기로 기계, 자동차, 전자 등 제조업을 키워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한국은 일본 모델을 참조하되,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압축성장을 이뤄냈다. 선진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통해 수출형 산업국가로 탈바꿈했다.
AI 중심으로 한 기술주권 기반 산업정책의 대전환 필요
1990년대 세계화 흐름 속에서 미국 모델이 확산됐다.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글로벌 생산체계가 자리잡았다. 미국은 기업의 창의성이 주도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했고, 정부 역할은 기초연구 투자에 집중했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 벤처 육성 등을 통해 정보화 기반을 다졌다. 이후 기술혁신을 통해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며 일본, 독일과 견주는 제조강국으로 도약했다.
지금은 AI 패권 시대다. 초거대 언어모델, 생성형 AI, 고성능 연산 인프라, 산업용 데이터 활용 등 AI 역량이 산업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미국은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이 혁신을 이끌고, 정부는 보호주의와 기술통제로 이를 뒷받침하며 AI 패권 경쟁의 정점에 서 있다. 반면 중국은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바이오 등 산업 전반에 AI를 빠르게 접목시키고 있으며, 태양광과 배터리 산업에서 발휘한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공급망 전주기 통제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범용 AI와 플랫폼을 지배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에 중국은 AI의 산업적 활용과 공급망 전략 자산화로 맞서고 있다 하겠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첨단 제조업의 성공 경험을 AI 분야에서 재현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의 전 과정에 AI 기술을 체계적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설계부터 생산, 예측 정비, 물류 최적화와 고객 서비스 전반을 AI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별로 특화된 AI 파운데이션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산업 데이터 공유와 클라우드 연계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AI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고성능 GPU 클러스터, 국가 연산 자원 공유망, 산업용 데이터센터, 국산 AI 반도체 설계 플랫폼 등을 공공이 전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관련 제도와 기관의 정비도 필요하다. AI 관련 산업진흥법을 통해 기술 확보, 인재 양성, 데이터 활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공 펀드 조성, 세액 공제 등 과감한 재정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셋째, 정부의 전략과 기업의 창의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민관 협력의 생산적 거버넌스를 수립해야 한다. AI 기술주권은 부처 간 협업은 물론 기업-정부-연구기관 간 긴밀한 연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범정부 차원의 AI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중장기 기술개발과 데이터 공유체계, AI 윤리 기준 및 글로벌 표준 전략을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율성과 혁신성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미래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시간
지난 2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AI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160조원의 투자유치를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와 초거대 언어모델에 대한 통 큰 투자로 미·중을 뛰어넘을 강력한 독자기술 확보 의지를 역설했다. 남이 만든 틀에 맞추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자율성과 혁신성을 앞세워 AI 기술 주권을 확보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