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재부각…공시 의무화 본격 논의
‘선택’에서 ‘의무’로 … 신뢰성 확보 위한 감리·제재 강화도 필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 추진
이재명 정부에서는 ESG 정책이 다시 전면에 부각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ESG 공시 의무화를 조기에 도입하겠다고 밝혀 공시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감리·제재 강화와 함께,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준 정비도 필요하다.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지표 경영에 도입’ 전세계적 추세 =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정태호 민주당 의원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럽연합(EU)의 ESG 규제에 발맞춘 한국판 ‘공급망 실사법’으로, 지난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 입법을 재추진하는 것이다.
정 의원은 “최근 국제적으로 ESG 정책을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반영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 제고와 장기적 가치 실현을 위하여 중요하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국제적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기업의 인권·환경 실사에 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기업활동을 장려·지원하고 기업에 의한 인권과 환경의 침해를 예방,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실제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는 기업 공급망 인권·환경 실사에 대한 의무화 법이 시행되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업의 사회 기여와 지속가능성 달성을 위한 비 재무적 성과지표를 경영에 도입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지속가능공시 체계를 적용한 국가가 36개로 늘어났으며, RE100 가입 기업이 430개를 돌파하면서 공급망 탄소발자국 관리 요구가 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후위험 공시는 이미 국제적으로 요구사항이 유사하게 정립돼 있어, 한국 기업은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군(ESRS),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등 다양한 규제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율공시 아닌 법정공시로 전환 =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당시 ‘상장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신속 추진’을 공약한 바 있다. ESG 공시 도입은 지난 2023년부터 금융당국이 관련 논의를 시작했지만, 재계 반발로 사실상 동력을 잃은 상황이다.
하지만 ‘상장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신속 추진’이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데다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되면 담당 업무로서 ESG 공시 의무화·탄소중립산업법 제정 등 ESG 규제 강화 정책 마련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당국이 ESG 로드맵 공개를 준비 중이고, 새 정부도 이 제도를 조기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에 따르면 ESG 공시 및 평가지표의 법제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의 ESG 투자 기준화, TCFD(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의무화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부터 단계적으로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2026년 코스피 상장사 ESG 공시 의무화 계획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단순한 자율공시가 아닌 법정공시로의 전환을 통해 기업에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시장에서는 한국 자본시장의 전환을 기대했다. ESG는 규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의 부담 호소와 정치적 이견으로 지지부진했던 ESG 공시 의무화 추진이 본격화되면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며 “ESG 공시 의무화를 통한 투명성 제고는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 연구원은 “ESG 공시 의무화가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의 준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할인 요인을 해소하고 글로벌 투자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 기대된다”며 “특히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정부와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레벨업된 일본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