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상법 개정과 세번째 민주화 운동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 이후 연일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3년 5개월 만에 2900을 뚫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본격화되자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는 매도가 많았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는 매수가 많았다. 6월 16일 코스피 종가는 52포인트가 오른 2946으로 마무리됐다. 코스피는 3000고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은 ‘중동 전쟁’보다 강했다.
상법 개정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중동 전쟁보다 강력한 것일까?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①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②법 통과 후, 즉시 시행 ③이사 선출시 집중투표제 활성화 ④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⑤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이 포함된다.
지배주주의 ‘사익편취’가 횡행하는 주식시장
많은 투자자들은 상법 개정의 통과를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대주주에 의한 소수주주 약탈이 중단되는 전환점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주식회사는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활용한 사익 챙기기, 공익법인과 비상장 기업을 활용한 재산 빼돌리기 등이 횡행하고 있다. 흔히 터널링(tunneling)이라고 불리는 ‘사익 편취’ 행위들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소수 주주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은 ‘세 번째 민주화 운동’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 민주화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정치권력의 민주화였다.
두 번째 민주화 운동은 1987년 7~9월 사이에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공장의 민주화’였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 공간이 열리게 되자, 울산에서부터 노동운동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첫 사업장은 지금은 현대중공업과 통합하고 사라진 현대엔진이었다.
1987년 당시 현대앤진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이 흥미롭다. 첫 번째 요구는 구타 금지였다. 두 번째 요구는 두발 자유화였다. 임금인상과 노동조합 설립 보장은 그 다음 요구사항이었다. 1987년 한국의 공장은 ‘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오늘날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많지만, 최소한 ‘구타당하지 않을 자유’를 쟁취한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성취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은 세 번째 민주화 운동으로 불릴 만하다. 핵심은 ‘주식회사의 민주화’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의 근간이다.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는 경영학의 논쟁적 주제이지만 주주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주체다.
그간 한국은 15~30% 정도의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회사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빼돌리는 ‘사익편취’가 횡행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익편취의 대부분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를 투자자들이 환영하는 이유다.
상법 개정은 ‘재벌체제’와 역사적 작별을 상징
한국은 압축 고도성장으로 유명한 나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재벌 총수들의 공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과 중화학공업을 담당하는 대기업을 중시했고, 재벌은 ‘계열사 자금을 조달해서’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한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주도 혁신성장’을 했고, 재벌은 ‘배임주도 혁신성장’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재벌체제의 공과(功過)를 평가하되, 악마화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1987년 민주화가 박정희 체제와의 결별이었다면, 2025년 상법 개정은 재벌체제와의 역사적 작별을 의미한다. 이제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