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올리버 크롬웰의 길과 이재명의 시간

2025-06-18 13:00:03 게재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리듬을 갖는다고 한다. 과거가 그대로 똑같이 반복되진 않는다 해도 그 기본 패턴이나 구조, 주제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현실로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말의 정곡은 인간을 역사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리듬을 바꾸어 갈 수 있는 능동적 주체임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국가나 위기국면에서 주어진 상황을 재구성하고 자신들의 리듬을 살려가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되풀이되는 몇가지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주변 강대국 갈등이 격화될 때 한반도가 그 파고에 휩쓸려온 것이 그 중 하나다. 권력정치의 횡포에 국민들이 저항하고 불의를 타파하지만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전에 역사의 반동에 직면해온 것도 최근의 한 패턴처럼 보여진다. 멀리는 4.19와 6월항쟁, 가까이는 2017년 촛불항쟁에서 반복된 양상들이다.

윤석열정부 1000일, 권력의 무능과 부패에 국정은 표류했고 그러는 사이 미중갈등의 파고가 한반도를 덮쳐왔다. 꼬여가던 정국이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폭발하자 민주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꺼져가는 민주주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 ‘빛의 혁명’으로 반전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6월 4일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이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 발을 떼었을 뿐이다. 민생경제는 바닥인데 국제 무역질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미동맹의 역할에도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난마같은 이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 그리고 임기 5년동안 어떻게 역동적 역사 리듬을 살려내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지금은 위기 속에서 변화의 동력을 포착하고 이를 국가전략으로 반전시켜 가는 지혜와 능력이 절실한 시간이다. 12.3 내란과 김건희씨 관련 의혹, 채 상병 사건 등 윤석열 정권기의 각종 논란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할 세 특검의 승패가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주정 폐지한 크롬웰도 결국 독재의 길로

민주국가에서 국가원수가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왕조국가에서도 이런 막장극은 국민적 저항과 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 국가를 정상화할 것인가? 시대는 다르지만 400여 년 전 영국의 경험을 성찰하면 긴 호흡으로 문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1642년 국왕 찰스1세는 왕권을 제한하려는 5명의 의원을 체포하기 위해 400여명의 근위대를 이끌고 하원을 급습했다. 그들이 이미 도피한 후여서 국왕의 기도는 실패했지만 그의 무모한 도발은 왕당파와 의회파가 무력으로 충돌하는 전국적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초반에는 왕당파가 우세한 지역이 많았지만 올리버 크롬웰의 신형군(New Model Army)이 전세를 역전시켜 나갔다.

1647년 의회군 포로가 된 찰스1세는 당시 별개의 왕국이었던 스코틀랜드의 군대를 끌어들여 반격을 시도했지만 역시 크롬웰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리고 그는 1649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는 자신은 국민을 위해 일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왕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서 재판의 정당성을 부정하면서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왕은 가장 우월한 지위에 있지만 영국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거에는 귀족들이 왕에 대항했지만 지금은 의회가 그 일을 한다. 의회는 국민의 고통을 해소할 의무가 있다”라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찰스1세의 불행은 그가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국가 주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갇혀있던 그는 청교도 등 신흥세력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던 현실을 부정하고 의회의 동의없는 과세, 전제적 정치와 전쟁을 남발해 국민적 원성을 자초했다.

1649년 의회는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국(Commonwealth of England)을 선포했다. 그러나 내란 진압과 국왕 처형의 중심에 섰던 크롬웰이 독재의 길로 빠져들면서 ‘왕이 없는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정치적 혼란과 의회 내 갈등 속에 1660년 찰스 2세가 즉위하면서 청교도 혁명 시대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격동기의 경험은 입헌정치라는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이재명정부, 새 역사 리듬 창조자 돼야

이재명정부는 ‘대통령에 의한’ 내란, 군사반란이라는 불행한 사건을 신속 단호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사초’를 쓰는 심정으로 일하겠다.” 내란 사건을 다룰 조은석 특검의 일성이다. 하지만 헌정질서를 위협한 세력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 여전히 중대한 숙제다. 단죄와 통합, 법치와 민심의 긴장을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입헌적 정의를 관철할 정치력이 절실한 이유다.

비결은 국민과 함께 흔들리지 않는 민주헌정의 원칙과 철학을 확고히 견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용주의 정책으로 국민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의 리듬을 회복하고 창조하는 것, 그것이 이재명정부에게 맡겨진 역사적 ‘사명’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