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서 위력 잃은 대학 졸업장
대졸자 실업률 높아지고
고졸과 임금 격차 줄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술, 금융, 법률 등 전통적 고소득 전문직의 채용이 줄고,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청년 대졸자들이 과거보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떨어진 직업 만족도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컨설팅회사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매튜 마틴은 미국 내 22~27세 사이 학사 이상 학위를 소지한 청년층의 실업률이 사상 처음으로 전국 평균 실업률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특히 첫 일자리를 찾는 졸업자들이 실업률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고용 지표를 넘어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변화라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영국, 캐나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최상위 인재로 분류되던 MBA 졸업생들마저 타격을 입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경우 졸업 3개월 내 취업률이 2021년 91%에서 2024년 80%로 하락했다.
이 같은 흐름은 대졸자와 고졸자 간 임금 격차 축소로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2015년에는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69% 더 많은 임금을 받았지만, 2024년에는 그 격차가 50%로 줄었다. 직업 만족도 또한 하락 중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대졸자가 현재 직장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고졸자보다 평균 7%포인트 높았지만, 현재는 3%포인트에 그친다.
문제의 핵심은 수요 측면의 변화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레일라 벵갈리 연구원은 대졸 임금 프리미엄 축소가 “기술 편향적 변화의 둔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과거에는 대학 졸업자가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이제는 고졸자도 충분히 해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 대중화 되면서 비대졸자들의 기술 역량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채용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인 사이트 ‘인디드’에 따르면, 대부분 산업에서 학력 요건이 완화되고 있다. 미국의 전문·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에서는 대학 학위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인력이 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2009년부터 2024년 사이 금융 및 보험 업종에 종사하는 15~24세 고용이 16% 줄었다.
인공지능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으나, 주된 원인은 아니다. 수년간 이어진 인수·합병 부진 등으로 법률·금융 업계의 고용 수요가 위축된 영향이 더 크다.
미국에서는 2013년부터 2022년 사이 학사 과정 등록자가 5% 감소했다. 반면 고등교육이 비교적 저렴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등록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는 같은 기간 36%, 아일랜드는 45% 증가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공 선택일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예술, 인문, 사회과학 전공 등록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 분야 청년들의 미래가 어두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